#7. 쓸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좋아

그땐 그랬지.

by 감우

호주에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이력서를 쓰는 일이었다. 캐리어 네 개가 짐의 전부인 주제에, 부부가 둘 다 백수인 주제에, 빛이 잘 드는 연희동 투룸을 월세로 구해 놓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살면서 남 줄 돈을 못 줬던 적은 없었는데 첫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취직이 안 될까 봐 걱정하지는 않았다. 쓸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좋았으니까. 월급도, 복지도,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최저 시급보다 적은 페이를 받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쓸 수만 있다면.

이렇게 생각을 하니 어디든 나 하나 써 줄 곳 없겠냐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진 것이다.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넣었다. 책과 가까운 곳, 글과 가까운 일이 있는 곳에 닥치는 대로. 문학 계간지나 출판사 입사를 희망했으나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가장 처음 연락이 온 곳은 명품 병행 수입하는 백화점(?) 같은 곳의 블로그 마케팅을 하는 부서였다. 직접 쇼핑을 한 뒤에 남기는 후기처럼 스토리텔링을 하는 일이었는데 말이 좋아 스토리텔링이지 사실은 거짓말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그래도 합격하고 싶었다.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 아무튼 글을 쓰는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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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기 테스트도, 면접도 잘 봤다고 생각했는데 연락은 오지 않았다. 두 번째로 연락이 온 곳이 나의 전 직장이다. 패션디자인을 전공했고, 수필 공모전에 응모했던 글 두 개를 함께 첨부했더니 두 번째 연락이 온 곳도 패션 회사였다. 두 번째 연락이 온 곳은 처음 연락이 온 곳보다 훨씬 크고, 옷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회사였다. 당연히 급여도 최저시급보다는 높았고. 더군다나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었으니 이건 거의 운명이랄 수밖에. 사실은 문학 가까이 가고 싶었지만, 그 상황에 더 바라는 것은 욕심이었다. 옷 쪽으로 다시 갈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중간에 뛰쳐나온 학교도 헛된 경험은 아니었다. 그 경험이 결국 나를 쓸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쓰는 일로 밥을 벌어먹고, 월세를 낼 수 있도록.


이 모든 일은 2주 안에 일어났다. 첫 달 월세부터 밀릴까 봐 걱정하며 마음 졸였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거의 동시에 다시 취업했다. 냉장고도, 세탁기도,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집에 캐리어 네 개를 풀어놓고 맨바닥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을 때도 사실 우리는 매일 웃었다. 아무것도 없어 너무 넓어 보이는 집을 둘이 함께 쓸고 닦고, 할부를 하기 위해 중국집에서 5만 원어치를 배달시켜 2박 3일을 먹으면서도 우린 매일 웃을 거리를 찾아내 웃었다. 그리고 그 집에서 가전과 가구를 차곡차곡 빠짐없이 채웠다. 우리는 바닥을 다지며 조금씩,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남편과 나는 지금도 가끔 그날들을 생각한다. 얼마 전 오디오북으로 들었던 데일 카네기의 <자기 관리론>에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가 하는 걱정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쓸데없는 걱정을 하느라 정작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해서 걱정이 더 커지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나는 그 구절을 들으면서도 취업이 되기 전의 시간들을 떠올렸다.


호주로 떠날 때 나는 한국에서 취업이 안 될 거라 걱정했고, 호주에서 한국으로 올 때는 있는 돈을 다 까먹어 서울에서 제대로 된 집은 구하지도 못할 거라고 걱정했다. 집을 구하고는 월세를 못 낼까 봐 걱정했고, 취업이 되고서는 대출 빚 때문에 돈 한 푼 모으지 못할 거라고 걱정했다. 내가 걱정했던 모든 일들 중에 실제로 일어난 일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단 한 번도 월세를 밀리지 않았고, 대출은 기한보다 2년이나 먼저 상환했다. 대출을 빨리 갚은 덕분에 단기간에 꽤 목돈을 모을 수 있었다.


이제는 걱정 대신 욕심을 조금 내 보려 한다. 이제는 문학 가까이로 가 봐야겠다. 문학이 있는 곳에서 나를 불러주지 않는다면, 내가 있는 곳으로 문학을 불러오겠다고 다짐한다. 이제 쓸 수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 좋았던 챕터는 지나갔다. 또다시 새로운 챕터를 시작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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