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그렇게 회사원이 된다

길을 잃었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나는 길 위에 있었다

by 감우

출근을 한다. 퇴근을 한다. 연봉이 오른다. 승진을 한다. 또 출근을 한다. 퇴근을 한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기다리던 합격 연락을 받았을 때, 사회에 드디어 내 책상 한 자리가 생겼을 때, 첫 월급을 받았을 때, 첫 연봉 인상이 되었을 때, 첫 승진을 했을 때, 그 모든 순간들의 벅찬 감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매일 타성에 젖은 발걸음을 옮기고, 사소한 불평불만이 쌓여가고, 연봉이 너무 적다고 투덜대는 날들이 이어졌다.


월급은 얼마가 됐든 상관없다고, 나에게 자리를 내어 주기만 한다면 열과 성을 다 바쳐 일하겠다고 말하던 그때 그 마음가짐은 전부 어디로 가버린 걸까. 거침없이 쏟아내던 불평불만의 화살이 결국 나에게로 향했을 때,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20대 초반의 우리들은 취직만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 믿었었다. 30대가 되고 친구들을 만나 가장 많이 하는 말은 '회사가 답은 아니더라'가 되었다. 나는 취업이 조금 늦었던 편이지만, 이제 주변 친구들은 회사원이 된 지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길지 않은 시간인데, 우리는 벌써 불안하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이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 나는 얼마나 높이 올라갈 수 있을까. 올라가지 못하고 도태된 나는 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럼에도 자발적 백수가 된 지 1년 가까이 되고 보니, 회사원의 삶이 가장 마음 편한 삶이다 싶다.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면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돈이 들어오는 삶. 평일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쉬는 삶. 빨간 날이 많은 달엔 괜스레 설레는 삶. 그럼에도 불안은 지속되고 또 가중된다. 대체 언제까지 이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삶을 유지할 수 있다 한들, 주거 안정의 꿈은 점차로 희미해진다.


며칠 전 동네 서점에 이력서를 넣었다. 기존 연봉에 한참 못 미치는 연봉을 제시했지만 그래도 일해 보고 싶었다. 책과 가까이 가고 싶었고, 서점 운영에 관하여 배우고 싶었다. 남편과 나는 진지하게 서울을 벗어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당장 서울에서 점포를 얻을 필요를 상실했으니 일단은 돈을 벌기로 한 이유도 컸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면접까지는 봤지만 합격하지 못했다. 이유가 재미있다. 사장님은 내 스펙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나에게도 스펙이란 게 있었던가? 면접에서는 떨어졌지만 왠지 용기 비슷한 게 생겼다. 어쩌면 내가 나의 가치를 너무 저평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회사원이 되고 싶나? 당장의 수입을 생각하며 흔들렸던 순간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결국 나의 대답은 언제나 No로 귀결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이 되고 싶나. 10대의 나는 대학만 가면 길이 보일 거라고 믿었었고, 20대의 나는 취직만 하면 길이 보일 거라 믿었는데, 30대의 나는 여전히 오리무중 속이다. 그래도 한 가지 달라진 점은, 결국 대학도 취직도 답은 아니더라는 결론을 도출했다는 것이다. 어차피 세상에 00만 하면 보장되는 성공은 없다는 것. 그러니 결국 각자의 길은 각자가 만들어 가야만 한다는 것.

나는 다시 회사원이 될 수도 있다. 앞으로 다시는 회사원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곳에 길이 있을 거라 믿고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어차피 정답은 없는 거니까.


얼마 전 읽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싶다.

나는 몰랐다. 언젠가는 나도 뭔가가 되겠지만, 내가 지금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인지. 이후 몇 년 동안 찾고 또 찾아도 아무것도 못 되고 아무 목표도 못 이룰 수도 있다. 시간이 흘러서 목표를 이뤘는데, 그것이 매우 사악하고 위험하고 무서운 일이었다고 드러날 수도 있다. (129쪽)

어차피 인생이란 이런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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