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_내가 되고 싶은 사람
꼭 일 년 전 이맘때 써 두었던 매거진 [나의 오늘을 당신에게 보냅니다]를 편집하고 있다. 브런치북을 만들기 위해서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는데, 몇 가지 놀라운 발견이 있었다. 첫째는 생각보다 글이 괜찮아서 놀랐고, 둘째는 지금 이곳에 쓰고 있는 글과 많이 닮아 있어서 놀랐다. 나는 매일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으면서도 문득 돌아보면 언제나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마 둘 다 틀린 말은 아닐 거라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다.
아직도 불렛저널에 4월 먼슬리 페이지를 만들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기록은 잠시 중단되었는데, 그 잠깐의 틈 사이로 고민의 물결이 흘러들어오고 있다.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싶다는 욕심과, 기록해야 한다는 압박에 짓눌려 더 중요한 일을 뒤로 미루게 되는 현실 사이에서 명확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기 위해, 해야 한다면 수십 수백 번이라도 경로를 수정할 생각이다. 경로를 수정하는 것을 실패로 치부하지 않기로 했다. 더디더라도 나에게 맞는 속도로, 내가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만의 기록을 해 나갈 생각이다. 지금껏 나는 스스로를 끈기 없는 사람으로 평가절하해 왔지만, 사실은 끈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안 맞는 길을 가려고 했던 건지도 모른다. 나의 길을 찾아 그곳에 안착하고 나면 누구보다 굳건한 끈기를 가지고 꾸준히 걸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나는 거의 매달 관심 대상이 달라지는데, 지난달은 잉크와 만년필이었고, 이번달은 속옷과 향수가 될 것 같다. 얕고 넓게 퍼져나가며 무한으로 증식되는 나의 관심사는 결국 '취향 찾기'라는 하나의 점으로 다시 모인다. 20대의 나는 다소 무채색이었지만, 30대에는 색을 가지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꼰대'라는 단어가 너무 부정적으로 자리 잡아 버린 나머지, 모두가 꼰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의 색을 버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튀지 않고 무난하게 사회에 섞여 들어가려다 그만 나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돌아볼 일이다.
지난 주말 친구들을 만났을 때도, '꼰대'라는 키워드는 여러 번 등장했는데, 나는 어쩐지 그 표현이 불편해져서 이렇게 소리쳤다. "꼰대가 뭐 어때서! 네가 말한 그 상사는 꼰대가 아니라 그냥 병신이라구! 꼰대라는 단어를 욕보이지 말란 말이야!"
꼰대의 사전적 정의는 다소 과격하게도 '늙은이' 혹은 '선생'을 이르는 은어이다. 그리고 이 표현은 사회적 진화를 거쳐 '권위적인 사람' 혹은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을 칭하는 표현이 되었고, 지금은 너무 많은 남용이 이루어진 나머지 그 의미가 상당 부분 오염되어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을 넘어 '자기 의견을 정당하게 피력하는 사람'에게도 꼰대라는 표현을 함부로 갖다 붙이는 경향이 있다. 이 '꼰대'라는 단어 하나가 사회를 무채색으로 물들이고, 개성을 마비시키고, 목소리를 내어 마땅한 사람들의 입까지도 무분별하게 틀어막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단지, 취향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사람 말에 휘청 저 사람 말에 휘청 줏대 없이 흔들리지 않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동의하지 못하는 것에 동의하는 척하지 않을 수 있는, 언제 어디서나 주관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 강요하지 않되 강요 당하지도 않는 사람. 그런 어른이 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