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일 일요일

휴무

by 감우

어제는 오랜만에 학교 동기들을 만나 오랜만에 술을 한 잔 마시고 조금 취해서 돌아왔다. 스무 살 때 만나 매주 금요일마다 클럽으로 출근도장을 찍고, 첫 차 뜰 때가 돼서야 집으로 돌아가던 우리들은 어느새 전부 유부녀가 되었다.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막차 끊기기 전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모임이 되었다. 이건 결혼을 해서라기보다는 체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우리는 막차가 끊기는 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불금이 시작됐었는데 말이지.

녹사평 한식 주점 '주식', 모든 음식이 맛있었다!

오늘은 벚꽃 막차를 타기 위해 집 근처 벚꽃 명소를 찾아 꽃놀이를 다녀왔다. 남편과 나는 외부 활동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지만, 4월의 벚꽃축제와 10월의 불꽃놀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꼬박꼬박 챙겼더랬다. 코로나 이후로 우리의 전통 아닌 전통도 사라졌다. 벚꽃이 피면 이제 여의도로 뛰어가기보다는 집 근처 산책로를 걷는 것으로 만족하게 되었다. 가뜩이나 집 밖을 잘 나가지 않는 우리의 활동 반경은 어쩐지 점점 더 좁아지는 것 같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홍대 주민이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망원동 희우정로 벚꽃길에 다녀왔다.


드라마 '미생'을 다시 보고 있다. 운동할 때 틀어놓을 게 필요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오랜만에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 '미생'의 원작 만화가 워낙 명작이기도 하지만 드라마도 정말 웰 메이드가 아닐 수 없다. 드라마를 보며 나의 회사원 시절을 떠올려 보게 되고, 짜증 나고 짠했던 우리 부문장님 생각이 나기도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우리 서점의 손님들이 가장 많이 생각난다. 전공 도서와 수험서가 있는 층에서 일을 하다 보니 대학생, 대학원생, 로스쿨생, 고시생, 취준생 등등의 온갖 준비생들을 매일 만난다. 수험서를 사서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짠한 마음이 든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또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회사에 취직해도 결국 인생의 온전한 주인이 될 수 없다는 현실을 곧 깨닫게 되겠지.


대학만 가면, 취직만 하면, 결혼만 하면의 싸이클로 이어지는 인생길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00만 하면' 끝나는 깔끔한 결론 같은 것은 없다는 현실이다. 삶은 계속 이어진다.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에도 삶은 계속 이어지고, 목표한 바를 이룬 뒤에도 삶은 계속 이어진다. 우리에게 허락된 확실한 결말은 오직 죽음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목표점 없는 인생이 너무나 아득하여 '00만 하면'이라는 데드라인을 정해놓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정상에 오르고 나면 산 하나를 정복하게 되는 등산이 아니라 끝없는 평지가 계속되는 평야를 끊임없이 걷는 일이다. 우리는 계속 걸어간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해가 뜨거나 질 때에도 우리는 계속 걸어가야 한다. 그러니까 굳이, 뛰어갈 필요는 없지 않나? 찍고 내려와야 할 정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올해의 벚꽃은 유독 더 탐스럽게 만개했다.


벌써 벚나무에 초록빛 새순이 돋아나고 있다. 꽃들이 야속한 이별을 준비한다. 이제 곧 짙은 초록으로 뒤덮인 여름이 올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내년 이맘때 벚나무가 다시 한번 환하게 피어오를 때까지 계속 이어지겠지. 그러니까 그때까지 또 열심히 걸어가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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