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엔들 잊힐리야
아주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긴 시험이 드디어 끝나는 꿈을. 나는 안도했다. 뿌듯함, 홀가분함, 편안함, 온갖 나른한 감정들이 몰려왔다. 나른함에 젖어들 때쯤, 돌아가신 셋째 큰아버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나의 아버지는 9남매 중 여섯째였다. 나의 어린 시절 명절 풍경은 언제나 어른과 아이들이 가득 들어찬 집에서 왁자지껄 북적이는 소리와 가스불 위에서 쉴 새 없이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줄지어선 냄비들로 대변된다. 꿈속에서 나는 꼭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뒤늦게 도착한 사촌오빠들까지 속속 집으로 모여들었다. 한참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도 보였다. 그곳에 있는 모두는 옅은 미소를 띤 편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곧 큰아버지가 떠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모인 자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큰아버지는 언제나 그랬듯, 나를 꼭 안고 "우리 단비" 하고 낮게 읊조릴 뿐이었다. 나는 그 품이 너무 포근해서 꿈인 줄 알면서도 깨고 싶지 않아 졌다.
휴무였던 주말 이틀 동안 그간 밀린 잠을 몰아 잔 기분이다. 어젯밤도 어김없이 나도 모르는 새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꿈을 꾸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둘러 모여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던 대가족의 풍경은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축소되었고 할머니의 죽음으로 종말을 맞이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일가친척이 한 자리에 모였던 건 작년 말, 셋째 큰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였다. 우리가 함께였던 그 시절이 너무나 아득해서 차라리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이제는 이렇게, 꿈에서만 그 풍경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휴무날은 기록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날이 필요하다. 특별히 피곤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혓바늘이 돋아 며칠 고생을 했는데, 지난 이틀 동안 기회가 될 때마다 잠을 청했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혓바늘도 사라져 버렸다. 주말 내내 기절하듯 잠드는 나를 본 남편은, 하루를 야무지게 보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너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라는 일침을 남겼다.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