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달해야 할 이상향은 없으므로, 자유롭게!
도달해야 할 이상향은 없으므로, 자유롭게!
롱블랙 구독을 중지할까 진지하게 고민하다, 그냥 가볍게 소비하는 쪽으로 선택을 유예했다. 롱블랙은 매일 하나의 노트가 업로드되는데, 노트를 열어 보지 않은 상태로 24시간이 지나면 구독 중이더라도 지난 노트를 볼 수 없게 된다. 이러한 특성이 처음에는 희소성 그 자체를 상품화한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으나 몇 달 사용해 보니 마냥 좋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어느 순간부터 쫓기는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가볍게 스크롤을 내리며 읽기에는 10분이면 충분한 정도의 텍스트이지만, 나는 좀 과도한 방식으로 소비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옆에 노트를 펼쳐 두고 오른손에는 펜을 쥐고 왼손으로 스크롤을 내리기 시작하는데,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나오면 일단 스크롤 내리기를 멈추고 노트에 해당 문장을 받아 적어야만 했던 것이다. (이게 뭐라고!) 이 과정은 최소 30분 이상이 소비되며,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많을 경우 그 이상이 걸리기도 했는데,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롱블랙 들어가기가 부담스러워졌다. 노트가 하나씩 밀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쫓는 이는 없는데 홀로 쫓기는 입장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다 때려치우기로 했다. 어제의 노트를 놓쳤더라도 미련은 두지 않기로. 미처 다 읽지 못한 지난 노트들이 밀려 있더라도 그것을 다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버리기로. 더 이상 롱블랙 노트를 읽으며 손글씨로 문장을 받아 적지 않는다. 꼭 기억하고 싶은 문장은 캡처해 인스타에 올리는 방식으로 기록한다. 망각을 유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록을 택했지만, 모든 것을 기억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자꾸 망각한다. 기록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기록을 위한 기록이 되어버리는 순간 주객이 전도되어 스트레스만 유발한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깨닫고 있다.
(오늘의 글머리 문장은 오늘의 롱블랙 노트(김신록 배우의 인터뷰)에서 따온 것인데, 절묘하게도 오늘의 글과 연결되는 듯하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도달해야 할 이상향은 없으므로, 자유롭게!)
출판사들은 새로운 책을 기획하는 것만큼, 베스트 및 스테디셀러의 유지 관리에도 힘쓰고 있다. 그 방식 중 하나가 리커버판인데, 요즘 서점원들 사이에서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리커버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리커버판이 등장한) 10만 부 기념판과 [열린 책들]에서 기획 중인 '디에센셜'시리즈가 핫하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경우 현재 온라인 서점에서는 10만 부 기념 스페셜 에디션만 판매 중이지만, 우리 서점은 총 세 가지의 커버를 전부 보유하고 있어 손님이 찾으면 세 권을 카운터에 깔아놓고 '골라골라'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커버가 세 가지 버전으로나 출시되고 나니 서점원들 사이에서도 슬슬, 이 정도면 셋 중 하나는 골라서 사야 하는 거 아니냐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나는 어쩐지 첫 디자인이 제일 나아 보인다.
[열린 책들]의 '디 에센셜'시리즈는 [열린 책들]을 북디자인 맛집으로 인정하게 만들었는데, 시리즈의 첫 책으로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합본 완전판이 출간됐고, 두 번째 책으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출간되었다. 해당 시리즈는 교보문고가 공동 기획하여 교보문고에서만 구매가 가능한데, 동료가 <죄와 벌>의 구매 의사를 밝히며 주문을 넣어놨으니 일단 실물을 보고 구매를 결정할 생각이다. 이왕 사는 거라면 <장미의 이름>도 같이 사는 것이 프로 책 쇼퍼로서의 마땅한 도리일 듯하다.
사실상 리커버판의 구매 증진 효과는 (우리 서점 기준으로) 매우 미미한 편인데, 지금껏 리커버로 가장 재미를 본 책은 단연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할 수 있다. 비양장이 양장으로 바뀐 데다 원서와 동일한 디자인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심지어 기존 커버 디자인의 엽서까지 동봉한 비닐 패킹 도서가! 동일한 가격으로 출시되었으니, 리커버로 재미 보려면 이 정도 파격 구성은 되어야 한다는 소리.
<장미의 이름>도 30주년 기획에 포함되어 있는데, '디 에센셜' 시리즈의 가격이 무려 31,500원인데 비해 30주년 시리즈는 단돈 10,000원! 절판 도서인데 서점에 재고가 있어 구경 갔다가 궁금했지만 읽어 본 적은 없는 폴 오스터의 책 한 권을 데려왔다. (<장미의 이름>은 '디 에센셜'로 살 수도 있으니까.. ^^)
참! 금,토는 휴무인 관계로 [2023 Record]글이 업로드되지 않습니다! 일요일에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