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책의 날'에 하는 책 이야기
백 권 천 권의 '베스트 도서' 같은 것은 없다. 각자 끌리고 수긍하고 아끼고 좋아해서 특별히 선택하게 되는 책들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훌륭한 장서란 '주문'으로 갖출 수 없으며, 각자 애착과 필요를 좇아 차츰차츰 모으게 되는 것이니, 이는 친구를 사귀는 이치와 똑같다. (...) 나이가 많건 적건 누구나 책의 세계로 들어가는 자기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_129-130p
세계 책의 날에 마침 읽은 책이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라고 한다면 너무 뻔한가? 특별히 의도한 것은 아니고, 짧은 에세이를 모아 편집한 책이니 만큼 일터에서 짬짬이 읽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이유로 3일째 출근길에 동행하고 있다. 서점에서 일하며 가장 좋은 점은, 한가한 시간에 마음껏 책을 읽더라도 누구도 이상하게 보거나 눈치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손님이 카운터 앞으로 찾아와 나를 부를 때까지 책 속에 빠져 있더라도 "여기는 서비스가 별로군요." 하며 불평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다른 서점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일하는 종합 서점 같은 경우에는 세계 책의 날이라고 해서 책이 더 많이 팔린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였고, 오히려 어제보다 한가했으며, 사실은 나조차도 애정하는 인친들의 열정 가득한 피드를 보고서야 오늘이 세계 책의 날이라는 사실을 인지했을 정도다.
자! 그럼 지금부터 세계 책의 날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잠깐 가져 보도록 하자.
1995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제정되었으며, '세계 책의 날' 제정을 계기로 유네스코는 독서 출판을 장려하고 저작권 제도를 통해 지적 소유권을 보호하는 국제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기념일은 독서와 저술 및 이와 밀접히 연관된 저작권의 증진에 기여하면서, 책의 창조적, 산업적, 정책적, 국내적, 국제적 측면 등 다양한 면모를 끌어내는 데 그 목적을 가지고 있다
날짜가 4월 23일로 결정된 것은 책을 사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는 스페인 까딸루니아 지방 축제일인 '세인트 조지의 날(St. George's Day)'과, 1616년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동시에 사망한 날이 이날인 데서 유래된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계 책의 날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이제 세계 책의 날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으니,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겠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의 모든 작품을 다 읽고, 마지막 심사평만 남겨두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 내가 뽑은 최고의 작품은 성혜령의 <버섯 농장>이 되었다. 지속적으로 미묘하게 어긋나는 갈등을 섬세한 감정 묘사를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받은 점, 더불어 특별한 서스펜스 없이도 마지막까지 서늘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던 점 등이 가장 좋은 작품으로 꼽은 이유가 되었다. 그다음으로는 대상작인 이미상의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이 좋았고, 그 외 작품들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비슷하게 좋았으며, 비슷한 정도로 크게 와닿거나 오래 곱씹을 만하지는 않았다.
이번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작품들에 대한 개인적 호감 정도와는 별개로, 평론의 가치와 의미를 깨우치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지금껏 평론에 대해 '꿈보다 해몽이구만.' 하고 약간은 평가절하하거나, '대체 당신이 뭔데 남의 작품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사족을 붙여가며 함부로 단정을 짓는 거요.' 하는 반항 심리가 발동되곤 했다면,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조금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평론은 결국 평론가의 언어로 재해석되고 재정렬되어 탄생하는 일종의 2차 창작물로서, 그것이 단순히 해당 평론을 쓴 평론가 개인의 입장에 지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독자로 하여금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 주고, 비평적 읽기에 대한 가르침을 선사하고, 새로운 생각거리를 던져 주기도 하며, 때로는 나름의 답을 제시하기도 하는 길잡이의 역할을 한다. 때문에 평론가도 '데뷔' 혹은 '등단'이라는 표현을 통해 문단의 공식 일원으로 인정받는 것일 테다. 그러니까 어쩌면 이러한 수상작품집의 진정한 꽃은 작품이 아니라 평론 쪽인지도 모른다. 특히나 '젊은 작가상'의 경우 등단 10년 이하의 작가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상이니만큼, 나 같은 보통 독자에게는 낯선 작가들의 작품이 대다수를 차지하므로, 함께 실리는 평론의 중요성이 더욱 높다고 할 수 있겠다.
앞서 말했듯 문학동네에서 주관하는 '젊은 작가상'의 경우, 물리적 나이와 상관없이 등단 10년 이하의 작가들을 젊은 작가의 기준으로 삼는데, 언젠가는 머리칼이 희끗하고 주름이 깊게 팬 노(老) 작가를 젊은 작가로 만나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독자의 입장에서는 현실에서 문학적 낭만을 체험할 수 있는 뜻깊은 경험이 될 것만 같다.
오늘도 의도치 않게 지난한 글이 길게 늘어져 버렸지만, 아무쪼록 세계 책의 날을 맞이하였으니만큼, 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에 따라 책의 세계로 들어가는 자기만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