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2일 토요일

생리, 그 핏빛 연대에 대하여

by 감우

곧 생리가 터질 것 같아 매일 생리대를 챙겨 다니다가 마침 생리대 파우치를 놓고 나간 오늘 생리가 터졌다. 생리란 언제나 이렇듯 비열한 방식으로 여자의 뒤통수를 친다. 터져 나오지 말아야 할 순간에 기어이 피비린내를 내뿜으며 터져 나오는 식으로, 제발 좀 나오라고 조를 때는 꽁무니를 빼고 도망쳐 결코 얼굴을 내 보이지 않는 식으로. 동료에게 생리대 하나를 빌려달라고 말하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자의 일평생을 쫓아다니며 갖은 고통을 안기는 것도, 여자들의 끈적하고 은밀한 연대를 가능케 하는 것도, '생리'라는 피의 역사로 귀결된다는 사실에 대해.


초경이 시작되면 으레 '진짜 여자가 되었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진정한 여자로의 대관식을 치르게 된다. 초경의 의미는 단순히 가임 여성이 되었다는 사실에 그치지 않고, 핏빛 역사의 당당한 일원이 되어 어떤 연대의 울타리 속으로 자연히 진입하게 되는 시발점이 된다.


중학생 때의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내 앞자리에 앉은 남학생에게 앞의 여자애를 좀 불러달라고 부탁했는데, 부르라는 친구는 불러주지 않고 자꾸 자기에게 말하면 전해 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너한테 할 말이 아니니 그냥 친구를 불러 달라고 거듭 말했지만 저도 오기가 생겼던지 그냥 나한테 말하라고 버티기 시작했다. 나도 더 이상 참지 않고 "생리대 좀 빌려달라고 전해"라고 부러 큰 소리를 내어 말했는데, 그 순간 놈의 얼굴이 점차로 벌겋게 물들며 말까지 더듬는 것 아닌가. 나는 성공적으로 한방 먹인 것 같다는 생각에 묘한 희열감까지 느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초경이 시작된 이후로 여자들 사이에는 '너한테 할 말은 아닌' 어떤 비밀이 은밀하게 공유되는 것으로 일련의 연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사실 생리란, 말 그대로 생리 현상 중 하나에 불과하므로, 그다지 은밀할 필요가 없음에도 그 필요 이상으로 은밀한 구석이 있다. 이것이 사실은 매달 피를 쏟아내는 행위가 부끄러워서라기보다, 여성 연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암묵적인 약속일지도 모른다. 비밀은 언제나 음지에서 은밀히 이동될 때 그 힘을 발휘하므로.

누군가는 여적여라느니 보적보라느니 온갖 상스러운 말을 갖다 붙이며 진정한 연대는 여자들의 몫이 아니라는 듯 거짓 주장을 펼쳐대지만, 여자들에게 숙명처럼 부여된 피의 연대는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단단하게 이어져 있다.


방금 전까지 머리채를 잡고 싸우던 사이라도, 상대방의 둔부에 핏빛이 비치는 것을 목격한다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윗옷을 벗어 상대방에게 내어 주는 것이 우리들 연대의 힘이다. 누군가의 주먹이 얼굴로 날아올 때 본능적으로 두 팔을 올려 방어하게 되는 것처럼, 고무망치로 무릎을 치면 나도 모르게 무릎 아래가 번쩍 들리는 것처럼, 붉은 피를 목도하는 순간 즉각 반응하여 서로를 보호하도록 세팅값이 정해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 피비린내 나는 생리의 역사는 오직 여성의 전유물로써, 이로 인한 수치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여성 전체의 수치로 받아들여진다. 검붉고 진득한 액체의 쿰쿰하고 비릿한 냄새가 외음부에서 스멀거리며 올라올 때마다 이 연대는 더욱 긴밀하고도 은밀하게 결속된다. 공중 화장실에서 만난 일면식도 없는 어느 아무개에게라도 생리대 하나를 부탁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자가 생리를 안 할 수 있는 길은 일평생 딱 두 가지 방법으로만 허용된다. 하나, 임신을 하였을 때. 둘, 폐경이 되었을 때. 그러니까 생리가 끊긴 이후에는 언제나 더 큰 고통이 찾아오고, 생리를 하는 중에는 은은하고 지난한 고통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꼴이 된다.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다 지금껏 나 스스로도 여성 연대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니, 어쩌면 여성 연대는 불가능하다는 쪽에 더 가까웠던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이 말을 전하고 싶다.

결코 벗어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피의 연대 안에서 우리는 언제나 하나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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