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을 읽으며 생각한 것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밀란 쿤데라의 <농담>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완전히 반해 버려서, 쿤데라 전집을 모으겠다는 생각으로 <농담>을 구매하였는데, 쿤데라의 소설을 두 권째 읽으며 느낀 점은,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시간들이 영문도 모른 채 길어 올려져 그때 나의 곁에 있던 (까맣게 잊은 줄 알았던) 사람들까지 떠오르게 한다는 것이다. 그다지 청춘 소설인 것도 아닌데 참 이상한 일이다.
아직 초반부를 읽고 있으므로 책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할 계제는 아니나, 농담으로 인해 일순간 일그러져 가는 루드비크의 서사를 읽고 있자니 완전히 잊혔다고 생각했던 언젠가의 대화가 떠올랐다. 때는 스무 살 중반 무렵쯤 됐으려나? 주변 남자들이 전부 군대로 징집되어 끌려가던 때의 이야기이다. 당시 자주 만나던 동창 모임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해병대 지원을 했더랬다. 해병대는 입대 전 면접을 보는가 본데, 그 질문이란 것이 좀 우스운 구석이 있었다. "우리의 주적이 누구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해병대 지원자가 화두를 던지며 대화가 시작되었다. 어떻게 대답했느냐, 면접용 답변 말고 진짜 주적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같은 의미 없는 대화를 낄낄대며 나누다 내가 말했다. "세계 경찰을 자처하며 우리 동포들을 탄압하고 대한민국의 자주권을 침범하는 미국이 주적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어야지."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웃었고, 물론 나도 웃었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도 위 대화와 별반 다르지 않은, 약간은 젠체하고 싶은 젊은 치기로, 실상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면서도 괜히 짓궂게 던져 본 농담 하나가, 인생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몰고 간다는 내용이다 보니, 아주 오랜만에 떠오른 (당시에는 매우 즐거웠던) 기억이 어쩐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타깃이 되는 순간 나의 진의와는 상관없이 그 덫에서 결코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이 사상 대립의 오싹한 민낯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가 농담이라는 방패를 내세워 희극적 분위기를 자아내며 던지는 여러 말들, 말하는 화자조차도 진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종의 연극적 대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말들 안에 '진짜' 진실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러니까 그것은 가짜가 아니라 나의 다른 얼굴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사실 말이다. 쿤데라의 소설을 읽다 보면 '나'를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되고, 그러면서도 어쩐지 더욱 격렬하게 묻고 싶어 진다. '진짜 나'는 누구인 것인지, '진짜' 진실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그런 것이 과연 존재하기나 하는 것인지.
'나'에 대한 정의를 내려볼라치면 언제나 타인이 보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내가 되고 싶은 '나'가 따로 또 같이 혼재하며 결국은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지고 마는데, <농담>을 읽다 그 미묘한 혼란이 묘사된 문장을 발견해 공유한다.
곧 내 안에서 (시대 정신에 맞추어) 내가 되어야만 하고 되고 싶어 하는 나의 모습과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 사이에 미세한 균열이 벌어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시절에 나는 정말 누구였을까?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아주 정직하게 답하고 싶다. 나는 여러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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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진짜였다. 위선자들처럼 내게 진짜 얼굴 하나와 가짜 얼굴 하나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젊었고, 내가 누구인지 누가 되고 싶은지 자신도 몰랐기 때문에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얼굴들 사이에 존재하는 부조화가 내게 두려움을 주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중 어느 것에도 꼭 들어맞질 않았고, 그저 그 얼굴들 뒤를 맹목적으로 이리저리 헤매 다니고 있었다.)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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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미지 (아무리 나와 비슷하지 않다 해도)는 나 자신보다 비교할 수도 없이 더 실제적이며, 그것이 나의 그림자가 결코 아니라 나, 바로 나 자신이 내 이미지의 그림자였다.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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