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2일 화요일

좋은 선배, 좋은 후배, 좋은 사장, 좋은 동료, 뭐 그런 것들에 대해

by 감우

휴무였던 어제,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민음사 북클럽 가입 선물이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말로만 듣던 대망의 '읽을거리', 잡동산이라는 것을 드디어 실물 영접하는 순간이었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첫눈에 반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읽을거리'라는 명목으로 제작된 두 권의 다소 두꺼운 스프링 제본이 조금 마음에 들어 버렸다. 매일 한 꼭지씩 읽으라는 출판사의 기획 의도를 착실히 이행하며 오늘 두 번째 꼭지를 읽고 온 참이다. 오늘 분량의 글은 <보통 맛>이라는 단편 소설이었는데, 회사 재직 시절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하며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만드는 내용이었지만, 아무튼 단숨에 읽히는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시선이 멈추었던 문장 하나를 공유해 본다.

나는 고은양에게 좋은 선배이고 싶었다. 지킬 것은 지키면서 융통성을 발휘하는 선배, 전문성을 가지면서 다른 영역에서도 개방된 선배. 나는 이제 내가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후배였다가 선배가 되었을 때, 나도 이런 생각을 자주 했었다. 그동안 가졌던 선배들에 대한 불만을 아로새기며, 나는 결코 그런 선배는 되지 않겠다고 매일같이 다짐하며.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알게 되는 것은 타인에게 어떤 사람으로 정의 내려질지에 대한 결정권이 나 자신에겐 조금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 뿐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깨달음은 좋은 선배가 되고 싶고 될 수 있다고 믿었던 나의 의지를 좌절시킴과 동시에, 결코 이해해 주고 싶지 않았던 선배들의 입장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함으로써 그들을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게 만들어 버렸고, 그로 인해 나는 한없이 무기력해졌다. 이 소설을 쓴 작가 최유안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경험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학교를 졸업했다는 새로운 후배는 열의에 넘쳤다. 가끔 퇴근을 할 때 나를 데려다주겠다고 하거나, 회사 앞에서 맥주를 한잔 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그의 제안을 대부분 거절했다. 회사 안에서도 업무 얘기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와 말을 거의 섞지 않았다. 원칙을 지키라는 말도, 지키지 말란 말도 하지 않았다. 지각을 해도, 일찍 와도, 늦게 가도, 아무런 조언도 하지 않았다. 나는 조금씩 더 무기력해졌고, 가끔 실없이 웃었다.

내가 결국엔 정확히 이런 사람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러니까 타인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에 대해 고심하는 일은 따지고 보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시간 낭비에 불과하겠지만, 지금도 종종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좋은 선배란 어떤 선배인지, 좋은 사장이란 어떤 사장인지, 좋은 동료란 어떤 동료인지, 좋은 후배란 어떤 후배인지에 대해. 전부 부질없는 거라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발악을 해 봐야 기껏 나 자신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좋은 선배가 되고 싶고, 좋은 사장이 되고 싶고, 좋은 동료가 되고 싶고, 좋은 후배가 되고 싶다는 로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건 단순히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과는 조금 다른 영역의 욕망일 거라고, 그러니까 그렇게까지 완전한 불가능의 영역은 아닐 거라고 조금은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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