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밍의 시대, 소유 없는 소울의 상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 같은 시간에 자리에 앉아 정해진 시간 동안 글을 쓴다는 하루키 루틴은 너무나 유명하지만, 솔직히 지금까지는 좀 짜치는 소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곳에 글을 쓰기 시작한 후로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퇴근 후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정말이지 하루도 빠짐없이 '오늘은 진짜 쓸 말이 없는데' 생각하지만, 어거지로 빈 창을 열고 키보드 앞에 앉고 나면, 정신 차리는 순간 쓸데없이 긴 글이 하얀 창에 가득 메워져 있다. (그렇게까지 길게 쓸 필요는 없다고!)
오늘은 뜻밖의 연휴라는 특이성 탓에 서점이 한가할 것을 모두가 예상했지만, 예상보다는 많은 손님이 찾아왔고, 보편적 기준을 대입하자면 매우 한산한 하루였다. 각 층 직원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출근하자마자 대청소를 시작했다. 청소를 끝낸 후에는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 일제히 반품 싸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후로 오래도록 정적이 이어졌다. 2층 직원 H는 마음 가는 소설책 한 권을 골라잡아 하루 만에 읽어치웠고(그녀는 우리 서점 대표 속독러!), 나도 밀란 쿤데라의 <농담>을 느리게 읽으며 하루를 보냈다. 누군가는 시간이 너무 안 간다고 은은한 불평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나의 경우는 오늘처럼 할 일 없이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날이면 "역시 서점원이 되길 잘했지!" 하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게 된다.
나는 보통 음악을 잘 듣지 않고, 집에서는 더더욱이나 음악 혐오자라도 되는 듯이 음악을 멀리하지만, 남편에게 헤드폰이 생긴 이후로는 새벽에 헤드폰을 끼고 잔잔한 음악을 듣는 것이 약간의 낙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처음부터 이렇게 소울 없는 인간이었던 것은 아니다. 용돈을 모아 첫 아이팟을 샀을 때의 설렘을 잊지 못해 액정이 박살 난 아이팟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mp3 시절에는 나도, 나름대로 엄선한 곡들을 mp3에 넣어 다니며 이어폰을 귀에서 빼지 않던 때가 있었다는 말이다. 지금처럼 스트리밍으로 모든 노래를 들을 수는 없었던 시절, 한 달에 40여 곡만이 허락되던 시절엔 오히려 음악에 훨씬 애정을 쏟았었다. 한 곡의 다운로드 버튼을 누르기까지 얼마나 오랜 고심의 시간을 거쳤던가! 각자의 mp3에 들어 있던 곡들도 제각기 달라서 쉬는 시간에는 친구와 mp3를 바꿔 듣기도 하고, 좋은 곡을 발견하면 가장 친한 친구한테만 슬쩍 알려 주는 재미도 있었더랬다. 그때는 내 mp3 속 곡들을 소유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꼈고, 그렇기에 그 속에 든 음악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트리밍의 시대로 접어들고부터 우리는 모든 곡을 소유할 수 있지만 어느 곡도 소유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 같다. 소유욕이 강하지만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에는 그다지 미련을 두지 않고, 보기가 너무 많으면 지레 질려 아무것도 고르지 않게 되어버리는 나에게 소울의 상실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온라인의 것들은 어쩐지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기 어렵고, 스트리밍이나 구독 서비스의 경우에는 그 허탈감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데, 나의 이런 특성이 어쩌면 다음 세대로 진화하지 못한 도태의 흔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소유란 역시! 내 손에 쥐고 물성의 촉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야 되지 않겠느냐고 주장하고 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