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8일 금요일

거대한 루틴 지옥 속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by 감우

오랜만에 자아성찰을 좀 해 보자면, 나는 꽤나 모순적인 인간인 듯하다. 언제나 자유로운 영혼이길 갈망하며 나를 억압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고, 먹고사는 일에 갇혀 훨훨 날아오르지 못하는 신세를 한탄하면서도, 실상은 오직 반복적인 패턴 안에 존재하고 있을 때에만 안정감을 느끼는 부류인 것이다. 나만의 루틴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약간은 집착적으로 루틴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내가 매일 입으로도 루틴 루틴 노래를 부르고, 글에서조차 루틴 타령을 해대니 이제 남편은 무슨 말만 하면 '루틴'을 언급하며 나를 비꼬기 시작했다. 커피를 내려놓겠다고 해놓고 내가 깜박했을 때 이렇게 말하는 식이다. "이게 네 루틴이었다면 잊지 않았겠지!" 이런 말을 할 때의 그 의기양양한 표정이란.


재미있는 것은 루틴을 만들고, 또 얼마간 지켜내며 성취감을 얻다가도 문득, 그 자체에 갑갑증을 느낀다는 것이다. '내가 왜 스스로 만든 케이지에 제 발로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갇혀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루틴 같은 것은 다 던져 버리고 다시 파랑새가 되어 새장을 열고 날아오르고 싶어 진다. (그러니까 이게 바로 그동안 내가 한 가지를 지속할 수 없었던 이유인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의 내 인생 자체가 이렇듯 양 극단을 오가는 루틴으로 굳어져 패턴화 되어 있었던 것 같다. 루틴을 벗어났다고 느낀 순간조차 루틴 속에 있었던 것이라니. 말하자면 액자식 구성 같은 것이려나? 루틴 밖에 루틴 밖에 루틴 밖에 루틴이 계속되는 그런, 영원히 액자 밖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는 어떤 고정된 패턴 속에 갇혀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자유 의지'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고, 대중은 MBTI 같은 것에 점차로 매몰되며 스스로를 패턴화 한다. 우리는 우리 인간종을 대단한 고등생물쯤으로 믿고 싶겠지만, 사실은 액자식 구성으로 짜인 어떤 틀 안에서 맴맴 돌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패턴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행을 좇지 말고 개성대로 살자는 주장이 어느새 유행이 되고, 모두가 "I am What I am"을 외치며 열심히 달리지만, 옆을 돌아보면 또 다른 내가 나란히 달리고 있다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니까 애초에 고유성이란 개념이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조건이라면? 인간의 고유성에 대한 욕망도 이해가 되는 바다. 가지지 못한 것을 갈망하는 것은 우리들 본능이니까.


솔직히 말하면 더 이상 '나를 찾는 일'같은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졌고, 다만 오늘을 잘 살아내고 싶다.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재미를 찾고 싶고, 오직 현재에 집중하고 싶고, 쓸데없는 걱정은 당장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싶고, 답이 없는 질문에 골머리 싸매는 일도 그만두고 싶다.


퇴사를 하고 브런치로 돌아와 [퇴사 이후의 세상]을 쓸 때와 [잃어버린 나를 찾습니다] 매거진을 개설했을 때, 그리고 [2023 Record]라는 새로운 빈 창을 열어 매일 뭔가를 써 올리는 지금의 나는 전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사이 참 많은 것들이 달라졌구나 생각해 보지만, 아마 남편이 이 글을 읽는다면 이렇게 말하겠지.

"매일 나를 잃어버렸다는 둥,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둥 뭔가 대단한 것을 깨달은 것처럼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지만, 넌 십 년 전에도 똑같은 소리를 했어. 하나도 변한 게 없다고!"

앞으로는 이런 말을 들으면 뻔뻔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해 줘야지.

"우린 어차피 어떤 쳇바퀴 안을 맴맴 돌고 있는 거라니까?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액자 속에 갇힌 거라고! 그러니까 그냥 즐겨, 이게 바로 나야! I am What I a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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