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풀이' 타도 운동에 동참하실 분 찾습니다.
평소보다 아동책이 많이 나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어린이날 특수라 할 만큼의 드라마틱한 효과는 없었던 하루였다. 늦잠을 자 버려서 눈곱만 겨우 떼고 뛰쳐나갔고, 그래서인지 하루종일 지치고 피곤했다. 때문에 일찌감치 오늘 운동은 생략하자고 마음먹었는데, 3일 연휴를 앞둔 남편이 엽떡에 뿌링클까지 시켜두고 내가 퇴근하길 기다렸고, 흡사 홈파티에 가까운 저녁 식사를 하고 났더니 그새 허리가 좀 두꺼워진 것 같다. 그래도 오늘 운동은 안 할 거다. 그러기로 했으니까. 그럴 수 있으니까.
내가 일하는 층에서 아동책을 취급하다 보니 내가 아동이었을 때보다 더 많은 아동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나는 아동책 안에 문제 풀이 페이지를 발견할 때마다 그렇게 화가 난다. 속담, 맞춤법, 역사 등 학습 목적으로 만들어진 책들이야 그럴 수 있다지만, 학습과 전혀 상관없어 보였던 책들을 펼쳤을 때 문제풀이가 나오는 것을 보는 순간, 한국 교육의 근본적 문제론까지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민음사 북클럽 구성품으로 받은 읽을거리, '잡동산이'에서 이런 페이지를 발견했다.
대체 왜! 내가 단편소설을 읽고 퍼즐을 풀어 보아야 하는가. 이런 게 바로 독서를 유희가 아닌 학습의 일환으로 만들어 버려 흥미를 딱 떨어트리는 아주 몹쓸 관습 같은 거라고! 좋다, 내가 어느 정도 꼬인 인간이라는 것은 겸허히 인정하겠다. 그러나 인정은 하더라도 꼬인 마음을 풀어낼 방법은 알지 못하겠으며,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건 안 가는 거다. 이런 문제 풀이 페이지가 끼치는 악영향이 얼마나 커다란 (진짜) 문제를 야기하는지 지금부터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새 책을 받아 든 아이가 있다. 아이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은자리에서 한 권을 훌떡 읽어버렸다. 완독 후의 뒷맛을 다시며 책의 내용을 음미하던 중에 무심코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더니 문제 풀이 페이지가 등장했다. 줄거리를 얘기해 달라고 하면 당장이라도 숨 가쁘게 말해 줄 수 있을 텐데, 세세한 것들이 가물가물 헷갈리기 시작한다. 문제풀이의 빈칸을 전부 채우지 못한다. 아이는 (전혀 느끼지 않아도 될) 좌절감을 느끼며 '독서 효용감'을 충족시키지도 못했을뿐더러, 신나게 읽었던 독서의 즐거움조차 빼앗겨 버린 듯한 기분으로 울상이 된다. 그때 옆에 서 있던 엄마가 한 마디 하는 것이다. "너 집중 안 하고 대충 읽었지!" 이제 이 아이는 말할 것도 없이 책을 싫어하는 아이로 성장하는 일만 남았다. 이쯤에서 아이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 책은 괜히 읽어가지고!"
그러니까 나는 당연히 '잡동산이'에 있는 "<보통 맛>을 읽고 퍼즐을 풀어 보자!" 같은 소리에 결코 응해 줄 수 없고, 당연히 퍼즐을 풀어 보지 않았고, 앞으로도 저항의 뜻을 담아 절대 풀어 보지 않을 생각이다.
P.S :
며칠 전 남편이 [마인드 카페]라는 어플을 알려 주며, 결과가 꽤 정확한 것 같으니 너도 한 번 해 보라고 권유했다. 약 10 분 정도의 테스트를 거치면 7일 동안 하루에 하나씩 결과가 오픈되는 형식인데, 오늘 받은 3일 차 결과지에 이런 문장이 담겨 있었다.
당신은 매사에 에너지가 넘치고 사교적이며 외향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흥분해서 몰입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다닐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당신의 모습은 창조적이고 진취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해진 규율이나 제도, 권위에 반항적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