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_진실만 쓰기
써야 할 날 쓰지 않은 건 아주 오랜만인 것 같다. 원인은 역시 잠이다. 요즘은 오후 세네시쯤이 되면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지고 난데없는 피로감이 몰려온다. 커피를 마셔도 소용이 없다. 어쩌면 조만간 제목이 날짜로 된 글을 그만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은 매일 습관처럼 뭔가를 쓰는 일이 꽤 효과적인 쓰기 훈련이 되는 듯하여 만족스럽다가도, 어느 날은 매일 뭔가를 써내야 한다는 사실이 압박과 부담으로 다가오며 급격히 피로해진다. 만약 다른 형태로 글을 쓰게 된다면, '매일 읽고 매일 쓰는 하루 한 장 에세이' 같은 진부한 제목을 달고 읽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써 봐도 좋을 것 같다. 쓸 말이 없을 때에는 읽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 한 게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꽤 공격적인 속도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읽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느끼게 되는 것은, 진정한 독서란 역시 책의 절반을 넘어설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읽는 일에 훨씬 가속이 붙고, 그제야 조금씩 전체를 보는 눈이 트이고, 결말을 빨리 알고 싶어 져서 좀처럼 멈출 수 없게 된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전체로 치면 700쪽에 가까운 두꺼운 책이지만, 굉장히 간결한 문체로 이루어져 있어 쉽게 읽힌다. '비밀 노트', '타인의 증거', '50년간의 고독' 총 세 개의 작품이 연결되어 커다란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고 있는데, 마지막 장까지 다 읽어야만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 현재는 마지막 작품인 '50년간의 고독' 초반부를 읽고 있다.
전체를 다 읽기 전에 책에 대해 가타부타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고, '쓰기'에 대한 이야기 중 매우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우리가 '잘했음'이나 '잘못했음'을 결정하는 데에는 아주 간단한 기준이 있다. 그 작문이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것들, 우리가 본 것들, 우리가 들은 것들, 우리가 한 일들만을 적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할머니는 마녀와 비슷하다'라고 써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할머니를 마녀라고 부른다'라고 써야 한다.
'이 소도시는 아름답다'라는 표현도 금지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 소도시는 우리에게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추하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당번병은 친절하다'라고 쓴다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당번병이 우리가 모르는 심술궂은 면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만 써야 한다. '당번병은 우리에게 모포를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또한 '호두를 많이 먹는다'라고 쓰지, '호두를 좋아한다'라고 쓰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좋아한다'는 단어는 뜻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정확성과 객관성이 부족하다. '호두를 좋아한다'와 '엄마를 좋아한다'는 같은 의미일 수가 없다. 첫 번째 문장은 입 안에서의 쾌감을 말하지만, 두 번째 문장은 감정을 나타낸다.
감정을 나타내는 말들은 매우 모호하다. 그러므로 그런 단어의 사용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고, 사물, 인간, 자기 자신에 대한 묘사, 즉 사실에 충실한 묘사로 만족해야 한다. (43~44)
나는 이 구절을 되도록 깊이 새기고, 나 또한 위 기준에 맞추어 최대한 진실에 가까운 것들을 쓰고자 노력해 보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역시 쉬운 문제는 아닐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