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9일 화요일

책임의 무게에 대하여

by 감우

어느새 휴무 전야가 되었다. 오늘은 남편의 생일이기도 해서 겸사겸사 통닭 한 마리를 사들고 퇴근했다. 맥주 다섯 캔을 꾸역꾸역 배낭에 넣어 짊어지고 걸어오는데, 어깨는 무겁지만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요즘은 휴무 전날 맥주 마시기가 하나의 루틴이 되었다. 남편 말대로 나는 요즘 소소한 루틴 만들기에 심취해 있다.


사실 진정한 자유란, 휴무 당일보다 휴무 전날 퇴근 후 새벽 시간이 진짜다. 아직 나의 휴무가 온전히 남아 있는 채로, 내일 출근에 대한 부담 없이 완전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 그래서 오늘은 통닭에 맥주 한 잔을 마시며 '고딩엄빠'를 보았다(?). 미리 말하자면 나는 이 프로그램을 전혀 좋아하지 않고, 프로그램의 취지가 상당히 의심스러우며, 사회적으로도 그다지 유익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여기는 입장이다. 그러니까 오늘같이 완전한 스트레스 프리 상황이 아니라면 보지 않는 것을 권한다.


모르겠다. 나는 아직 엄마가 되어보지 못했으므로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는 아니나, 만약 나의 자녀가, 특히나 그 자녀가 딸이라면, 그리고 그 딸이 10대에 임신을 했다면, 나는 적극 낙태를 권할 것 같다. 책임이란 것은 의지만 가지고 함부로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이 한 생명을, 그것도 한 인간을 낳고 양육하는 문제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낙태의 자유를 지지한다. 낙태의 자유를 지지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모든 생명은 환희와 기쁨 안에서만 탄생되어야 한다고, 지난하고 풍진 삶이 기다릴 고단하고 긴 인생길에서 적어도 탄생의 순간만큼은 모두가 그러한 영광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불행한 부모는 행복한 자식을 기를 수 없다. 그러니까 때로는 그 허울 좋은 '책임'이란 것이 죄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고딩엄빠'를 볼 때마다 느끼는 불편감은 언제나 문제의 고딩들이 아니라 그들의 아이들에게서 비롯된다. 나는 그 죄 없이 맑고 어린 아이들을 볼 때마다, 이런 상상을 해 보게 된다. 저들의 어린 부모들이 비장한 의지를 다지며 "어떻게든 책임을 지겠어요!"라고 선언하는 순간, 뱃속에 있을 아이들의 표정을 말이다. 과연 그 순간, 어린 부모의 자식이 될 운명을 받아 든 아이들은 미래의 부모가 될 이들의 용기에 감동하여, 환호하며 동의하고, 그 선언을 지지하며 감사히 여기고 있을까?


모르겠다. 결혼 8년 차의 30대 여성이지만 부모가 된다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 생각만으로도 아찔해지는 비겁하고 겁 많은 나 같은 아무개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완벽한 부모라든가 완벽한 가족 같은 것은 신기루에 불과하며, 그러니까 모두가 자신의 주관에 따라 선택하고 책임지며 사는 것뿐이다. 글을 마무리하려고 보니 혹여나 내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된다. 오늘의 글이 불편하셨다면, 절대 자책하거나 괘념치 마시고, 어떤 뭣도 모르는 아무개가 개소리를 지껄였거니 여기며 가볍게 지나가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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