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12일 금요일

서점의 의미

by 감우

처음 서점원이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이렇게 오랫동안 이곳 서점에서 일하게 될 줄 몰랐다. 나는 서점을 차리고 싶었고, 그래서 일을 좀 배우고 싶었는데, 예상보다 오랜 시간 서점원으로 일하며, 나는 점점 더 서점을 차리고 싶다는 마음과 멀어지고 있다. 수지타산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책 자체의 특성과 독서라는 행위의 특이성의 문제이다. 기본적으로 독서란 완전한 고독의 영역이다. 사실상 책을 ‘함께’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함께’라는 표현을 적용하려면, 같은 시간에 동일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책은, 그러한 아름다운 공존을 허용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같은 책을 읽을 수 있다. 같은 책을 읽은 뒤에 매우 흥미롭고 건설적인 토론을 벌일 수도 있다. 우리의 감상은 비슷할 수도 있고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책을 ’읽는‘ 행위의 시간과 그 시간 안에 깃든 감상적 경험이 그 누구에게도 온전히 공유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한 권의 책을 통해 느낀 점과 배울 점을 요약하여 정리할 수 있고 또 그것을 공유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한 권의 책을 통해 그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이 되었는지는 오직 나만이 느끼고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사실 책이란 것은 함부로 추천할 수도 없거니와 함부로 추천을 받아서도 안 된다. 여기서 첫 번째 문제가 발생한다.

추천할 수 없는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가.


서점원의 자격으로 카운터를 지키며 매일같이 마주하는 수많은 손님들을 생각해 본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필요한 책을 찾으러 서점에 온다. 내가 일하는 층에는 다양한 교양과학 도서들과 수많은 예술서적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즐비되어 있지만, 언제나 가장 많이 나가는 것은 수험서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매일 수십 권의 아동책 신간이 쏟아져 들어와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발길을 멈추는 곳은 오직 ‘흔한 남매’ 앞이라는 것도 비슷한 이유이다. 뜬금없는 책을 갑자기 여러 사람이 찾으면, 백이면 백 어느 티브이 프로그램에 소개가 된 경우다. 혹은 교양과목 교재일 수도 있다. 우리 층은 좀 특수한 경우라 치고, 문학, 에세이 등 대중 도서들이 주를 이루는 층을 예로 들어보자. 해당 층에서 가장 많이 나가는 것은 심지어 책도 아니다. 각종 문구들이 판매 순위 상단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구는 열외로 치고, 책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보기로 하자. 일단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원하는 책이 정해져 있는 경우로, 찾는 책의 위치에 대한 문의를 가장 많이 받게 되고(사실상 이 부분은 도서 장르와 상관없이 모든 층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다음으로 높은 문의율을 차지하는 것은 신간 코너와 베스트 코너의 위치이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손님들은 필요한(읽고 싶은) 책이 있거나, 잘 나가는 책중에서 고르려 한다. 여기서 두 번째 문제가 발생한다.

작은 서점의 경우 손님들이 찾는 대부분의 책을 가지고 있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는가.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큐레이션 서점이다. 특정 주제를 선정한 뒤 해당 주제에 맞는 도서들을 선별하여 모아놓은 경우이다. 이 경우는 나의 관심사와 부합하기만 한다면, 운 좋게 인생책을 발견할 수도 있다. 독립 서점 내지는 큐레이션 서점이라는 간판을 단 곳들은 기본적으로 인테리어에 상당한 공을 들이므로 왠지 좀 멋져 보인다. 공간도 멋지지만 그 공간을 찾은 나도 좀 멋져 보인다. 그런데 냉정하게 한번 생각해 보자. 주변에 책이란 것을 쥐고 읽는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거기다 나와 관심사까지 비슷한 사람을 만날 확률, 그리고 그 사람이 우연히 내 서점 앞을 지나다가 서점 문을 열고 들어와 내가 큐레이션해 놓은 책중에 하나를 골라 구매까지 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리고 여기서 세 번째 문제이자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나는 타인의 취향에 의존하여 책을 고를 마음이 전혀 없다. 그런데 내 취향을 타인에게 설득할 수 있는가.


그래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아래와 같다.

책 파는 일을 굳이 업으로 삼아야겠다면, 나는 종합서점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입장이다. 나의 취향이나 관심사는 내 서재 꾸밀 때에나 적용하기로 하고, 최대한 많은 책을 보유하는 것을 제1 목표로 두는 것이다. 책을 고르는 것은 나의 몫이 아니라 오직 손님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내가 고를 수 있는 책은 오직 내가 읽을 책뿐이고, 타인이 읽을 책을 타인이 고를 수 있는 방법은 결코 없다. 그러니까 서점이 서점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내 취향과 맞는 사람들이 멀리서 찾아오는 관광지가 되어서는 가망이 없고, 주변에 사는 어느 아무개라도 부담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와 그들이 필요로 하는 책을 구해 나갈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 책이라는 상품을 감성으로 접근하려면 영 답이 없다. 정작 책을 구매하러 오는 사람들은 감성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그저 필요에 의해 서점을 찾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다. 나는 요즘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읽고, 책이 점점 더 좋아지고, 역시 내가 선택한 라이프스타일은 읽고 쓰는 삶이라고 어제보다 오늘 더 확신하게 되는 이 시점에, 책을 팔아 먹고 살 수 없다면, 무엇을 팔아 먹고 살아야 할까. 그래서 요즘은 한가로울 때마다 책을 판매하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연구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대체로 공상에 지나지 않고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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