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한가
바야흐로 공유 경제의 시대라지만, 진정한 공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요즘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공유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그러니까 콩 한쪽도 나눠 먹는 그런 공유는 너무나 간편하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공유하는 것이 애초에 가능하긴 한 걸까?
오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문득, 이 공식 같은 문장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행복이나 고통을 진짜! 나눌 수 있다고? 감정이란 건 그것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오직 홀로 감당해야 하는 영역 아닌가?
나는 평생 나의 공감능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남편은 종종 내게 공감능력 장애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보통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요즘은 남편의 말이 진실인 것 같기도 하다. 가만 따져 보니 나는 감정을 마음이 아니라 머리로 받아들이고, 납득 가능한 경우에만 그것을 이해하는 형태로 공감한다. 납득이 되려면 감정에도 논리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나는 감정에도 원인과 결과를 찾으려 들고, 그것이 입증된 경우에만 그것을 인정한다. 그러니까 앞에 앉은 친구가 아무런 맥락도 없이 대뜸 눈물을 흘려버리면 나는 몹시 당황스럽다. 그 원인을 알기 전까지는 대응이 매우 어려워진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스한 눈길로 상대의 눈을 응시하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두 팔을 벌려, 떨리는 어깨를 그러안는 종류의 위로를 잘하지 못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얼마 전 정신과를 찾은 남편이 우울도가 높다는 결과를 받아 들고 돌아왔다. 나는 몹시 당황했다. 앞에 앉은 친구가 아무런 맥락도 없이 대뜸 눈물을 흘려버린 경우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남편을 잘 보듬어 주고 싶고, 좋은 지지자가 되어주고 싶고, 뭔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충만하지만, 그 방법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이, 내가 위로에 몹시 취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졌고, 감정 공유적 측면에서도 일종의 장애를 가진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나의 감정을 공유할 때에도 나름의 결론을 내린 뒤에, 그러니까 그 감정의 결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내 나름대로의 원인과 결과를 정리한 뒤에, 결과 보고 형식으로 감정을 공유해 왔다. 어떤 감정을 소화하는 일에 있어 타인의 몫을 남겨두지 않는 편이었고,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다. 그 감정이 좋은 쪽이라면 혹여나 젠체하는 느낌이 들까 봐 더욱 은밀하게 만끽하였고, 내가 진짜 무너져있는 상황에서는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려 버렸을 때 아무리 옆에 사람이 부축을 하고 일으켜도 이내 다시 주저앉고 마는 것처럼, 결국엔 내가 내 두 발로 땅을 디딜 수 있어야만, 비로소 걸을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의 소름 끼치게 확고한 개인주의적 성향에 새삼 놀랐다. 행복도 나의 것, 고통도 나의 것이라는 내 믿음은 타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 부부간에도 매사에 너는 너 나는 나라며 선을 그어대는 나 같은 여자를 만나 내 남편의 우울도가 높아진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하다. 어제는 농담처럼 "당신 주치의를 찾아가서 보호자 수칙에 대해 안내라도 받아야겠는걸?"하고 말했지만, 사실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다. 진짜 그 의사를 찾아가서 '우울도 높은 남편을 둔 아내 행동 강령'같은 것을 문서로 정리하여 공유해 달라고 요구하고 싶은 심정이다. 문서는 확실히 공유가 가능하니까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