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에세이의 묘미

2023년 5월 19일 금요일

by 감우

내가 하루키를 처음 접한 것은 아마도 중학교 1학년쯤, 교회 언니가 <해변의 카프카>를 권해주었을 때 인연이 시작되었다. 당시의 나는 애들 책이 아닌 모든 책에 심취해 있었으므로, 달게 받아 훌떡 읽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대학생이었을 그 교회 언니가 무슨 생각으로 중학교 1학년 생인 나에게 <해변의 카프카>를 권했는지 모를 일이다. 타이밍이 안 맞아서였을까? <해변의 카프카>가 어린 소녀였던 내게 일종의 충격을 선사하였음에도, 그것이 하루키에 입덕하는 계기가 되지는 못했고, 그 계기는 영영 찾아오지 않는 듯했다. 하루키 에세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나는 기본적으로 일본 문학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심오한 철학이나 심도 깊은 사색의 결과물은 아니고, 한때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열심히 찾아 읽다 이내 시들해졌고, 이후로 흥미로운 일본 문학을 발견하지 못한 탓이다. 몇 번 읽으려고 시도한 적은 있으나 이상하게도 집어드는 책마다 잘 읽히지 않았고, 결국 집어드는 책마다 완독을 못했고, 그러다 얼렁뚱땅 일문학이 나와 맞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여기에 하루키의 작품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또 하나 고백하자면, 나는 에세이 장르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보통은 소설을 편애하고, 다음으로는 학문적으로 결과가 입증된 학술형 저서들(그러나 과도하게 전문적이지는 않은)을 즐겨 읽는다. 소설은 가상의 세계를 여행하며 수많은 인물에 나와 나의 주변인을 대입함으로써 나와 나의 주변인들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고, 읽는 내내 끊임없이 텍스트를 이미지화하는 작업을 통해 오직 소설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아낌없이 선사하므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학술형 저서들은 내가 미처 몰랐던, 그러나 현실에 분명히 존재하는 세계를 알 수 있으니 그 자체로 흥미롭기도 하거니와,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내가 조금 더 유식한 인간이 되어간다는 희열을 만끽할 수 있으므로 포기하기 어렵다. 앞선 장르들에 비해 에세이는 확실히 좀 애매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에세이를 은근히 미워하게 된 이유는 나의 비뚤어진 오만함 때문이라는 것을. 소설도 못 쓰겠고, 학술 저서는 더더욱이나 쓸 주제가 못 되지만, 에세이는 왠지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조금만 노력하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무언가에 대단한 감명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것은 뭔가 좀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은, 약간은 꼬인 마음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용기 내어 인정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하루키 에세이는 꼭 나 같은 인간에게 권하고 싶은 에세이다. 하루키 에세이는 내가 소설을 쓰겠다고 나부대며 책상 앞에서 시간만 죽이고 있을 때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운명처럼 내게로 왔다. 하루키의 에세이는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들로부터 시작된다. 산책하며 만난 사람, 재즈바를 운영하며 경험한 에피소드 따위의 것들을 약간의 유머를 곁들여 가며 친구와 수다 떨듯 매우 가볍게 전하는 식이다. 짧은 호흡의 글이 리드미컬하게 전개되며 빠르게 읽힌다. 순식간에 에세이집 한 권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으며 생각했다. 이런 것도 글이 될 수 있구나. 그것도 이렇게 재미있는 글이!

하루키의 에세이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너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맞아! 그러니까 멍청하게 앉아만 있지 말고 뭐든 쓰라고!"


하루키의 에세이집을 읽고 용기를 얻었다고 해서 내가 소설가가 됐다거나 에세이스트가 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 이곳에 뭔가를 적고 있는 나도 쓰는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데에 하루키의 에세이가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발휘했다고 여기고 있다. 하루키의 작품을 비평할 만큼 하루키의 작품을 읽지 않았으므로, 하루키를 사랑한다거나 싫어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하루키의 에세이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는 날이면 언제나 쓰고 싶어지고, 쓸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하루키는 '쓰기'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문장 운운은 나중 일이고, 어찌됐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와 거의 비슷하다. 어떻게 여자를 꼬드길 것인가, 어떻게 싸움을 할 것인가, 초밥집에 가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 그런 것들 말입니다
한차례 그런 일들을 겪어보고 '쳇, 뭐야, 이 정도면 굳이 글 같은 걸 쓸 필요도 없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으면 그게 최고의 행복이고, '그래도 아직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 ㅡ잘 쓰고 못 쓰고는 제쳐놓고ㅡ 그때는 이미 자기 자신만의 독특한 문장을 쓸 수 있게 된 상태다. (34)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_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 中 '문장을 쓰는 법'

당신은 어떠한가. 최고의 행복을 얻었는가? 혹은 이미 쓰는 사람이 되었는가?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이루었을 테니 우리는 모두 행복한 사람들이다. '소확행'이라는 말도 하루키 에세이에서 처음 접하게 된 표현인데, '소확행'이라는 개념 자체를 글로 풀어낸 것이 바로 하루키 에세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니까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개정판은 못 참지! (이것은 따끈따끈 신간입니다!)

이번엔 꼭 전 세트를 전부 사 모으리라 다짐하며, 일단 한 권을 사들고 퇴근했다. 짧은 에세이 몇 편을 읽고, 용기를 내어 제목과 부제목의 위치를 바꿔 보았다. 아주 오랜만에, 제목이 날짜가 아닌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게 바로 하루키 에세이 효과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2023년 5월 18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