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죄인인가
요즘 드라마 '닥터 차정숙'을 즐겨 보고 있고, 책으로는 민음북클럽 에디션인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단편집 <독신남의 죽음>을 읽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현재 불륜 서사에 과도하게 노출된 셈이다. 불륜 서사는 일차원적으로 접할 때에는 너무 뻔해서 피로감과 짜증이 솟구치지만, 한 번만 꼬아 놓아도 매우 매력적인 소재가 된다. 드라마 '닥터 차정숙'은 시청자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여자친구가 있는 남학생과 우연히 하룻밤을 보내고 임신을 하게 된 여성과 가정이 있는 남자와 우연히 하룻밤을 보내고 임신을 하게 된 여성의 죄는 경중을 달리 보아야 마땅한가. (여기서 남자는 한결같이 무책임하므로 고민의 여지없이 죄인이다.) 상대적으로 피해자인 듯 보이는 '차정숙'의 편을 마음껏 들어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혼만 하지 않았으면 다른 사람의 애인을 갈취하는 행위를 이해받을 수 있는가? 결혼은 안 했지만 동거 중이라면? 결혼은 했지만 자식은 없다면? 단순히 하룻밤 쾌락을 공유한 것과 섹스는 하지 않았지만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사이는 어떤 식으로 죄의 경중을 구별할 수 있는가.
불륜(不倫)의 사전적 정의는 '아니 불'에 '인륜 륜'자를 써서 '인륜을 거스르다'라는 의미이다. 불륜이라는 단어를 사전에 검색하면 아래와 같은 뜻풀이가 등장한다.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난 데가 있음.' 그리고 우리는 불륜이라는 단어를 간통을 저지르는 행위의 뜻을 가진 보통 명사처럼 사용한다. '간통'의 사전적 정의는 '결혼하여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성적 행위를 맺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결혼하여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성적 행위를 맺는 것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난 데가 있음"이라는 결론을 내려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던져 볼 수 있겠다. 결혼하여 배우자가 없다면 지금 만나는 사람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과 성적 행위를 맺을 수 있는가? 결혼하여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성적 행위만 맺지 않는다면 다른 문제들은 용인될 만한가?
이런 식으로 사고가 흘러가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왜 이토록 반인륜적인 서사에 수백 수천 년간 뜨겁게 반응하는가. 사실 모든 인간이 ‘불륜'에 대한 내재적 욕망을 기본값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륜에 대해 과도하게 분노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기저에는 상대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는 데 대한 분노가 아닌, 지금껏 욕구를 억누르며 살고 있던 자기 스스로에 대한 연민과 억울함이 폭발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사실은 '불륜'이라는 일탈 행위에 대해 은밀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다면, 이제 이런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우리는 왜 결혼을 하는가."
종교적 이유로 혼전 순결을 주장하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때도 나는 이런 의문을 품었었다. 어디까지가 순결의 기준선인가? 손만 잡고 자는 건 순결한가? 입맞춤은? 키스는? 혀를 넣으면 부정하고 혀를 안 넣으면 순결한가? 손이나 입으로 하는 것은 순결하고 삽입은 부정한가? 이쯤 되면 '대체 순결이란 게 뭔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정리를 해 보기로 했다. 성적 행위가 오직 결혼한 사이에서만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이유는 임신이라는 엄청난 결과값이 따라올 가능성을 염두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성행위가 때로는 한없이 더러운 행위였다가 때로는 더없이 고결한 행위가 되는 것은 단순한 피스톤 행위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잉태의 가능성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결혼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임신을 하여 종족을 번식하기 위함”이라는 답을 내리는 것이 합당한가?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러한가?
우리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열 띄게 토론하며 어떤 합의를 이루어 보기도 전에 세상은 변화했다. 성행위라는 것이 반드시 결혼한 사이에서만 허용 된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는 이제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불륜의 기준도 변화해야 할까?
아마 우리에게 "결혼하여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삽입 행위를 갖는 것은 금지됨'이라는 간단명료하고 눈에 보이는 기준이 주어졌다면 지금처럼 불륜 소재가 불멸의 소재로 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판타지는 언제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미묘함 속에서 발아한다. 발상을 약간만 전환해도 완전히 다른 스토리로 다가오게 하는 힘. 불륜 소재에는 그 힘이 있다. '불륜'이라는 소재는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대단히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고, 결국에는 어떤 식으로도 명확한 답을 도출해 낼 수 없으므로, 불륜 판타지는 진정한 불멸의 존재로서 수많은 창작자들에 의해 영원히 전승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니까 오히려 이 엄청난 소재에 단순한 흑백논리를 대입하려는 것은 일종의 죄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