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로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는 어디까지 함께 갈 수 있고, 어디서부터 혼자 가야만 하는 걸까. 분명한 것은 혼자서만 걸어야 하는 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길에 외로움이 있다. 피할 수 없는 외로움이.
남편은 비가 무섭다고 했다. 비가 오면 집이 무너져 내릴 것 같다고. 빗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빨리 뛰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고. 나는 남편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비가 무섭다니. 그러니까 나는 나의 기준에 의거하여 남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나는 비를 무서워하는 남편의 길을 함께 걸어주지 못했다. 그 길을 혼자 걸어야 했던 남편은 많이 외로웠을까?
아주 오랜만에 남편과 3일을 연달아 함께 쉬었다. 남편과 함께 잠들고, 함께 잠에서 깨고, 함께 집을 나섰다. 사흘 중 이틀은 내내 비가 내렸다. 우리는 비 내리는 거리를 계속 걸었다. 기나긴 대화를 나눴고,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비가 무섭다는 남편의 말이 결코 가벼운 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동안 내가 장난처럼 여겨왔던 숱한 말들이 사실은 전부 장난이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긴 길을 홀로 떨어져 걸었던 걸까.
어떤 길은 반드시 홀로 걸어야만 한다. 뼈가 시린 고독을 느끼더라도, 오금이 저릴 만큼 무서운 마음이 들더라도, 누구도 함께 걸어 줄 수 없는 길이 있다. 그 사실이 조금은 서글퍼졌다. 떨리는 그의 손을 꽉 붙들고 내가 앞장서 걸어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떨어지지 않는 발을 마지못해 들어 올리며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니. 부부도 별 거 없잖아, 괜히 입을 삐죽거리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단히 문학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시인을 꿈꾸던 소년이 활자를 읽지 못하는 청년으로 성장한 것도, 좀처럼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하는 것도, 집요하게 캐물을라 치면 숨이 안 쉬어진다며 눈을 질끈 감는 것도, 뒷 이야기가 궁금해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한 편의 문학 작품 같다. 나는 언제나 나보다는 그가 쓰는 일에 더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나 붙들고 내 이야기를 왁 쏟아붓고 다니는 나보다는 입을 앙다물고 꾹 참다가 눈물 한 방울이 자신도 모르는 새 삐져나오고 마는 남편 같은 사람이 글을 써야 한다고. 그의 가슴속에 어떤 말들이 담겨 있을지 때때로 궁금해진다. 모든 것을 공유하는 듯 보이지만 부부 사이에도 결코 공유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갈까. 가끔은 '같이'라는 개념이 실체 없는 허상처럼 느껴진다. 나의 진짜 이야기 같은 것은 나 외에는 그 누구도 온전히 알 수 없다고. 그것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모든 것을 함께하는 것은 분명 불가능한 일이지만, 모든 것을 함께하는 것만이 '같이'인 것은 아니니까.
홀로 길을 떠나는 남편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일을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이런 말을 해 주고 싶다. 당신이 걸어야 할 어떤 길들은 내가 함께할 수 없겠지만, 그 길의 끝에는 언제나 내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우리는 때론 혼자였다가 때론 함께이겠지만, 당신을 영원히 혼자 두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러니까 겁먹지 말고 성큼성큼 걸어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