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좀!
코로나 이후로 가장 달라진 점은 국가가 내 남편보다도 나에게 메시지를 더 많이 보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십수 번씩 휴대폰 화면을 밝히며 각종 알림을 보내오는 통에 이제는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그대로 삭제 버튼을 누르게 되는 바로 그 재난 문자 이야기다. 오늘은 이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어제는 얼굴에 팩을 붙여놓고 잠시 소파에 몸을 기댄다는 것이 그대로 까무룩 잠이 들어 버렸다. 새벽녘 찬바람에 극세사 담요를 끌어 덮어 가며 자는 잠이 참 달았다. 요란한 재난 문자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는. 잠귀가 어두운 나조차 놀라서 잠이 깨었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대피하라는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인들의 안전 불감증이 아무리 심각한 상태라 해도 여전히 한국은 성인이 된 남자들이 군대로 끌려가는 나라다. 대피 메시지를 보고 자연히 북한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휴전 국가'라는 것을 기회만 되면 강조하는 이 나라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출근을 앞둔 평일 새벽에 대피하라는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은 북한군이 장갑차 끌고 38선을 넘어 남진이라도 하고 있다는 걸까? 찰나의 순간에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촌각을 다투는 긴급한 상황이라면 메시지에 '왜'가 빠진 것쯤은 이해해 줄 수도 있다는 소리다. 그런데 대체 어디로, 어떻게 대피를 하란 말인가.
전쟁 공포증을 보유한 남편의 상태를 확인하러 침실로 들어갔더니 그는 (그 시간에!) 외출복을 갖춰 입고 침대에 누워 약간은 얼어 있는 채로 뉴스를 확인하고 있었다. 나는 애써 웃으며, "대피하려고 옷 입었어?" 하고 장난처럼 말했는데, 속으로는 '별일 아니기만 해 봐라, 가만 안 둘 테다' 이를 갈고 있었다고! 남편의 휴대폰에서는 뉴스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뉴스 보도에도 알맹이는 들어 있지 않았다. 상황을 확인 중에 있다. 북한이 우주 발사체를 쏘았다고 하더라. 오키나와가 대피령을 내렸다고 하더라. 어쩌구저쩌구. 육하원칙이 채워지지 않은 공허한 말들이 소음이 되어 흘러나왔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까? 앵커의 휴대폰과 내 휴대폰이 동시에 울렸고, 재난 문자가 잘못 발송되었다는 정정 안내를 확인했다. 지금 장난하는 건가? 솔직히 오늘 새벽은 서울 시장실이든 청와대든 닥치는 대로 쳐들어가서 제대로 깽판을 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재난 문자는 말 그대로 재난 상황에서의 비상 알림으로써만 기능해야지, 시시콜콜 날씨 얘기까지 문자로 보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지금처럼 전 국민과 개인 카톡이라도 나누는 줄 착각하며 남발하다가는, 정말 재난 문자가 제대로 기능해야만 하는 순간에 그 누구도 재난 문자를 믿지 못하게 될 것이다. 오늘 발생한 일련의 사태로 인해 내가 느꼈던 진짜 공포는 바로 이 지점이었다. 또한 실제 상황이 벌어졌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아무런 설명도 없이 막연한 공포 분위기만 조성하는 것은 국민들을 패닉에 빠뜨려 더 큰 혼란만 야기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내가 정말 화가 나는 것은, 꼭두새벽부터 내 남편이 겁을 잔뜩 집어 먹고 얼어붙은 채로 출근길에 오르게 만든 것이 바로 이 나라라는 사실이다. 잘못 보냈다고 하면 그만인 가벼운 실수 같은 게 아니고, 누군가한테는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