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떡같이 말하면 어떱니까

찰떡같이 알아듣는데

by 감우

내가 일하는 서점에는 외국인 손님이 많은 편인데, 대부분의 외국인 손님들은 직원에게 말을 걸지 않고, 말을 거는 대부분의 외국인 손님들은 한국어를 곧잘 한다. 그런데 가끔, 한국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외국인 손님이 말을 걸 때가 있다. 말을 건다고 해 봤자 "소설은 어디에 있나요?" "만화책을 찾고 있어요" 따위의 것들이라 알아듣는 데 큰 어려움은 없지만, 나의 대답은 언제나 아쉬운 뒷맛을 남긴다. 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유려한 문장과는 거리가 멀고 토막 난 단어들이 뒤죽박죽 섞여 나온다. 외국인들이 아무리 개떡 같은 한국어를 구사해도 우리는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것처럼, 물론 그들도 나의 개떡 같은 영어를 찰떡같이 잘도 알아듣는다. 말을 걸던 외국인 손님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면 그제야 제대로 된 문장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딱히 아쉽거나 하지는 않고 다음에 또 외국인 손님이 같은 질문을 하면 지금 떠오른 이 문장으로 답해줘야지 다짐하곤 하는데, 같은 질문을 하는 손님은 이제껏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그러니까 이 일련의 과정이 매번 반복되는 식이다.


영어를 처음 배우던 때가 생각난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시작한 학습지 영어였는데, 나는 영어 수업 시간만 기다렸다가 초인종 소리가 들리면 한달음에 달려 나가곤 했다. 나를 가르치던 학습지 선생님도 영어를 처음 배운 게 맞느냐며 나를 놀라워했다. 엄마는 말했다. "얘가 어릴 때부터 언어 발달이 빨랐거든요. 언어 쪽으로는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어요."

새로운 단어를 만나고, 새로운 발음을 익히고, 알파벳으로 된 모든 것들을 주워섬기며 시간 가는 줄 모르던 황홀한 나날들은 언제 어떤 계기로 종말을 맞이한 걸까. 이후로 접한 영어에 대한 경험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아서일까? 영어를 생각하면 늘 그 시절이 떠오른다. 나는 말하고 싶다. 그렇게 탁월한 데가 있다고 믿었으면 학원 뺑뺑이 돌리지 말고 날 좀 믿어 보지 그랬어 엄마!


자주 와서 만화책을 사가던 외국인 손님 한 명이 어느 순간부터 말을 걸어온다. 직업도 알려 주고, 어디서 왔는지도 알려 주고, 이름도 알려 준다. 나도 그녀가 꽤 마음에 들어서 이런저런 대화를 좀 더 길게 나누고 싶고, 물어보고 싶은 것들도 많은데 참 쉽지 않다. 언어를 공부가 아니라 언어 그 자체로 배울 수 있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내가 되었을까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뭐, 지금부터라도 하면 되지! 언어 쪽으로는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다지 않습니까!


올초부터 스픽 어플로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래봤자 여전히 토막 난 단어들을 내뱉고 있지만 지레 겁부터 먹던 몹쓸 버릇은 조금 사라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외국인 손님들이 영어로 말을 걸어오는 일이 은근히 긴장되면서도 묘하게 기다려진다. 토막 난 문장을 말하더라도, 손님이 떠나고 나서 떠오른 문장을 입안에 굴리며 아쉬워하더라도, 나는 또 서점에 앉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헤매고 다니는 외국인 손님들을 기다려 볼 생각이다. 좀 개떡같이 말하면 어떱니까? 다들 찰떡같이 알아듣던데요 뭘.


그런데 한국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외국인들이 한국 책을 사 가면 읽을 수는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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