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봤자 실패밖에 더 하나요?
"내년 생일엔 임신 중일 것 같아서, 이번 생일은 더 재미있게 놀고 싶어."
7월에 생일인 친구와 약속 날짜를 조율하다 친구가 꺼낸 말이다. 친구는 이 말을 약간의 텀을 두고 두 번이나 강조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저런 식의, 미래를 담보하는 선언과도 같은 계획을 들으면 걱정부터 앞선다. 친구가 내년 생일에 임신 중이 아니면 어쩌지? 실망이 클 텐데, 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 오디오북으로 송길영의 <그냥 하지 말라>를 들었다. 빅데이터 분석 전문가인 그는 당연하게도 빅데이터에 근거한 여러 인사이트를 책에 담아 놓았다. 꽤 유용한 정보들, 영감이 될 만한 문장들이 많은 책이었는데, 어쩐지 나는 자꾸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그냥 하면 왜 안 되는데?'
이제는 일반인도 손쉽게 빅데이터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아무튼 지간에 세상에는 각종 정보들이 매일 새롭게 쏟아져 나온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읽는다 해도 세상의 모든 책을 읽을 수는 없듯이, 우리가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세상의 모든 데이터를 뇌 속에 입력해 넣을 수는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데이터에 근거하여 한다는 예측이란 것은 일종의 언어도단인 셈이다.
며칠 전 검색창에 '올해 장마 시기'를 검색했는데, 그중 한 기사의 댓글창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그런 거 분석할 시간에 내일 날씨나 맞춰라'
그런데 솔직히 미래를, 그것도 미래의 자연 현상을! 인간이 어떻게 완벽하게 맞출 수 있겠는가. 우리가 미래에 대해 할 수 있는 최선은 말 그대로 예측일 뿐이다. 예측의 사전적 정의는 '미리 헤아려 짐작함'. 그러니까 우리는 기껏해야 짐작만 해 볼 수 있는 것이지 어떤 예측이든 그 예측을 보장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선 분석 후 예측하여 결정하는 일에 집착하는 가장 결정적 이유는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우산을 들고나가거나 들고나가지 않는 사소한 실패부터, 금전적 손실을 불러오는 다소 치명적인 실패까지, 모든 실패를 피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과도 같으니까. 그러나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불행은 우리가 미래를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에서 비롯된다. 가 보지 않은 길은 영원히 그 끝을 알 수 없고, 오지 않은 미래는 무한한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수많은 가능성 중 단 하나의 점에 좌표를 찍고 달려가기엔 오히려 실패 확률이 너무 크지 않나요?
내가 생각하기에 데이터를 활용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미래를 통제할 수 없다는 인간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고, 나 자신을 믿으며 직관에 따라 빠르게 결정한 뒤, 해당 결정에 대한 결과치를 면밀히 분석하여 데이터화하는 것이다. 이 순서로 데이터를 쌓아가야 근본 역량인 직관력이 향상될 수 있다고 믿는다. 데이터 분석을 후 순위에 놓으면 실패도 조금은 덜 두려워할 수 있다. 실패도 데이터가 될 테니까. 성공 데이터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데이터가. 그러니까 경직된 어깨를 툭툭 털어 풀어내고, 지금부터 무슨 일이든 그냥 해 볼 생각입니다. 혹시 알아요? 성공할 수도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