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사원 이야기

서점의 일

by 감우

엄혹했던 코로나의 시대가 저물고 이윽고 봄이 도래하였으니 영업사원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거리로 나온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서점원이 되고 한동안 전혀 볼일 없었던 여러 출판사의 영업사원들이 서점을 드나드는 일이 눈에 띄게 잦아졌다. 그들은 대체로 깡마른 중년의 남자들이다. 서점을 천천히 둘러보며 본인 출판사의 책들이 얼마나 깔려 있는지 확인하고, 이 책이 왜 없느냐 저 책이 왜 없느냐 따져 묻고, 요즘 주문이 너무 적던에요 하며 은근히 우리들을 질책하고, 경쟁사의 책이 얼마나 나가는지 꼼꼼히 캐묻는다. 서점원들은 누구도 출판사 영업 사원을 반기지 않지만 그들은 꽤나 필사적이다. 그 왜소한 중년의 사내들은 모두 비인기 도서를 취급하는 군소 출판사의 직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 서점은 이미 모든 서가가 터져 나갈 듯이 가득 들어차서 전층 직원이 "이제 더는 감당이 안 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그들은 한 권이라도 더 밀어 넣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카운터에 찾아와 "이 책을 좀 주문해 주세요, 저 책을 좀 주문해 주세요" 읍소하는데, 서점원들은 "어차피 안 팔려요." 하며 제법 냉정하게 그들의 요구를 거절한다. 너무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이 정말 그렇다. 우리 서점은 대부분 위탁 거래를 하기 때문에 주문하기는 전혀 어렵지 않고, 굳이 위탁이 아니더라도 사실상 내 돈 나가는 것도 아니니 주문을 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꽂을 자리가 없고, 정말 어차피 안 팔린다. 일정 기간이 지나도 팔리지 않는 책은 반품을 보내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에 못 이기는 척 주문을 넣는다 한들 그것은 무의미한 책의 이동일뿐이다.


책의 세계는 정말 기묘한 구석이 있어서, (나는 여전히 납득을 못하고 있지만) 총판 거래보다 직거래의 공급율이 대부분 더 높다. 총판 거래는 유통 프로세스에서 한 단계가 추가되는 것인데 어째서 총판의 공급율이 더 저렴하게 책정되는 것인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총판은 반품을 보낸다고 득달같이 사찰을 나온다거나 눈치를 주는 경우도 거의 없으니 사실상 서점원들은 총판 거래를 더 선호한다.


그런데도 계속 찾아와 귀찮게 하는 중년의 사내들이 있다. 서점원들은 쳇머리를 흔들며 그들을 질리게 바라보면서도, 결국 또 찾아오는 것이 무서워서라도 공급율이 더 높은 그들 출판사에 주문을 넣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깡마른 중년의 남자가 찾아와 카운터 옆에 찰싹 달라붙어 서서는 별다른 반응조차 보이지 않는 M을 끊임없이 설득하고 회유했다. 드로잉 기법에 대한 책을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였는데, 디지털 드로잉은 또 전혀 취급하지 않는 쪽이다. 그러니까 우리 서점에서는 해당 출판사의 책을 찾는 손님이 거의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그에게는 "어차피 안 팔려요"도 통하지 않고, "책 표지가 별로여서요."도 통하지 않고, "꽂을 자리가 없답니다."도 통하지 않았으며, 되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하며 대책을 논의해 보자고 나서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 M을 괴롭히던 그는 제법 비장한 투로 "잘 부탁합니다! 또 올게요."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서점을 떠났다.


처음에는 꽤나 단호한 태도를 보이던 M도 결국 (울며 겨자 먹기이긴 해도) 해당 출판사에 주문을 넣었다. 그를 보며 생각했다. 영업이란 바로 저런 것이구나! 유려한 말솜씨로 상대를 설득하고 납득시키는 게 영업이 아니고,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상대를 질리게 해서라도, 그래서 그의 얼굴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서라도, 본인 회사의 물건을 사도록 하는 것이 영업이구나! 대충 이런 깨달음 같은 것을 얻으며, 이 세상 모든 세일즈맨들이 존경스러워졌고, 또 한편으로는 애잔해졌다. 그래도 아무튼, 가장 효과적인 영업 방법은 거래처를 들들 볶아 질리게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뭐 그런 이야기. 그러나 정도가 너무 심하면 거래 정리를 당할 수도 있답니다!

@unsplash. 서점을 찾는 영업맨들은 이렇게 수트 업 하고 오지는 않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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