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결론은 Kill Them All
쿠팡 플레이에서 ‘존 윅 4’를 무료로 볼 수 있게 해 준다길래, 서둘러 1, 2, 3을 몰아 보았다. 연출이 어떻고, 촬영 기법이 어떻고, 액션 퀄리티가 어떻고 하는 것은 나는 잘 모르는 영역이니 차치하기로 하고, 오직 스토리만을 놓고 이야기하자면 나는 개인적으로 1이 가장 좋았다. 일단 개연성이 확실하지 않습니까! 개의 복수는 안 할 수가 없지 않나요?!
’ 존 윅 2‘부터는 조금씩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멍청한 표정에 멍청한 말투로 “kill them all"을 읊조리는 그는 별로 멋지지 않고, 제발 작작 좀 하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존 윅 1 to 4를 한 호흡에 몰아보며 존 윅이라는 캐릭터를 나름대로 분석해 본 결과, 그는 굉장히 잘 싸우고, 웬만해서는 죽지 않는 불사신급 신체 능력을 가졌지만, 아쉽게도 지능면에서는 신이 그에게 재능을 허락하지 않은 것 같다. 그의 대책 없이 멍청하면서도 지나치게 자기 확신적인 면모는 ‘존 윅 2’의 결말에서 정점에 이르고, 나는 어느새 이마를 짚고 절레절레 도리질을 치며 올라가는 크레딧을 멍하니 보고 있게 된다. 그는 죽고 싶은 걸까, 살고 싶은 걸까. 의문을 남기며 ’ 존 윅 3‘로 넘어간다.
‘존 윅 3’에서 나는 존 윅의 바라는 바가 확실히 죽는 쪽보다는 사는 쪽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의 생에 대한 집착적 의지가 도리어 나를 다소 질리게 만들어 버렸다. 살고 싶은 이유라는 것이 “아내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라는 대사에서는 약간의 경악과 함께, “존 윅 씨!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그만하고 좀 솔직해 집시다! 죽고 싶지 않다고, 아직은 더 살고 싶다고, 남자답게 인정을 하라고요!”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게 만든다. ‘존 윅 3’에서의 주인공 존 윅은 본격 민폐 캐릭터로 발돋움하여, 그가 지나가는 길마다 폐허가 되고, 그와 옷깃을 스친 이들마다 그와 옷깃을 스쳤다는 이유만으로 스러져 간다. 이쯤 되면 존 윅이라는 캐릭터는 지독하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내인데, 엄청난 민폐를 끼쳐 가며 걸어야 하는 그의 길에서 그만한 희생을 치를 만한 명분을 찾기란 쉽지 않다.
‘존 윅 4’에서는 기어이 내 마음이 이런 말을 외치게 만들고야 만다. “미스터 윅, 민폐 좀 그만 끼치고 제발 좀 죽어주면 안 되겠소? 당신만 죽으면 모두가 행복하다잖소!! “ 그의 친구들은 그의 친구라는 이유로 죽고, 울며 겨자 먹기로 도움을 줬던 이들은 도움을 줬다는 이유로 죽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윅은 자기 한 목숨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싸운다. 이쯤에서 이런 상상을 해 보았다. 좀처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최고 회의’라는 조직은 어벤저스가 세계 정의 구현 차원에서 좀 소탕해 주기로 하고, 존 윅을 블랙 위도우 후임으로 영입하면 어떨까? 웬만한 히어로보다 몸빵력이 강한 것 같은데 말이지. 아무튼 존 윅의 네 번째 여정도 끝이 났다. 그래서 이 영화가 마음에 안 드는 거냐고? 전혀! 존 윅이라는 캐릭터에는 딱히 반하지 않았지만, 존 윅이라는 프랜차이즈 시리즈에는 반해 버렸다. 가슴이 찌르르하게 조여드는 긴장 요소도 없이, 이렇다 할 대의명분도 없으면서, 닥치는 대로 때려죽이는 존 윅의 살상 액션을 보고 있으면 묵혀 있던 스트레스가 뻥 뚫리는 기분이었으니까. 이 지점에서 생각해 볼 만한,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폭력성과 그에 대한 욕망은 좀 다른 문제지만 아무튼!
영화 ‘존 윅’의 장르는 B급 액션이다. B급의 기준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존 윅은 관객이 철학적 질문에 빠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대의명분을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죽일 수 있으니까 죽인다는 신념 하나로,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모두의 이마에 총알을 박아대며, 나아가고 또 나아간다. 존 윅은 옳고 그름을 고민할 시간에 죽이길 택하고, 오히려 관객이 ‘저건 너무 심하지 않아?’ 걱정을 하면, 약간은 멍청한 표정을 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마, 그냥 다 죽여 버리면 되거든. 어차피 내가 다 이겨. 그러니까 KILL TEHM ALL"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채 펼쳐지는 무자비하지만 시원시원한 액션은 어쩔 수 없이 뭔가에 억압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 충분하다. 그러니까 가끔은 존 윅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 봐도 좋겠다. 앞 뒤 좌 우를 전부 고려해 가며, 있지도 않은 대의명분을 찾아댈 시간에 그냥 한번 밀어붙여 보는 것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 길이 된다는 정신으로, 갈 수 있으니까 간다는 마음으로, 그냥 가 보는 것이다. 매일 그렇게 대책 없이 사는 것은 곤란하고, 아주 가끔, 가끔씩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