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글 쓰는 시간을 오전으로 바꾸기로 했다. 평소보다 세 시간 정도 일찍 나가 서점 근처 카페에서 글을 쓰다 출근하기로 했다. 매일 습관처럼 쓰되, 반드시 하루에 하나의 글을 완성해야 한다거나 하는 제약 같은 것은 두지 않기로 했다. 정해둔 오전 시간에만 글을 쓰고, 그 외의 시간에는 ‘아 글을 써야 하는데’ 같은 생각은 일절 하지 않기로 했다. 꾸준한 쓰기 활동을 통해 쓰기 근력을 키우면서도, 지나친 스트레스나 압박을 부여하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는데, 나한테 맞는 방법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무튼 오늘은 휴무날인데도 불구하고 카페에 와 앉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요즘의 나는 예전에 비해 감정기복의 기울기가 현저히 낮아 퍽 잔잔한 그래프를 유지하고 있고, 작은 것에서 행복과 감사를 찾으려 노력하고, 꽤나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요즘의 나는 그다지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오늘에도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요즘의 내가 지난 모든날의 나보다 마음에 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예전에는 힘들 때만 도망치듯 빈 창 앞으로 달려와 울분을 토하듯 글을 써대곤 했지만, 요즘의 나는 행복한 순간에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넘쳐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꽤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확신하며 요즘의 나날들을 만족감에 젖은 채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오빠와 계획에도 없던 통화를 하기 전까지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일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서비스직이 나의 적성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어떤 정보도 상호 교환하지 않은 상태의 완벽한 타인은, 내가 그에 대한 정보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그와 나 사이에 그 어떤 시간의 역사도 개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친절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 친절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나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일수록 친절해지고,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예민하고 괴팍한 잣대를 들이대게 되는 것이다. 결코 좋다고만은 볼 수 없는 나의 이러한 성질은 원가족과 함께일 때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중 나를 가장 예민하게 만드는 상대는 역시 나의 하나뿐인 형제다. 내가 그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과도한 정보와 우리 사이에 얽혀 있는 지난한 세월의 역사가 종종 나를 진절머리 치게 한다.
그에 대해 가지고 있는 나의 개인적 감정과는 별개로, 나는 그를 대체로 좋은 분위기 속에 대하려 노력하고, 되도록 그의 입장에 공감하는 형태로 대화를 시도한다. 그것은 결코 내가 착해서라거나 하는 아름다운 이유 때문은 아니고, 어차피 영영 버릴 수는 없는 존재이기에 그렇다. 영영 버릴 수 없는 존재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내는 일은 결국 내 마음을 오래도록 불편하게 하는 일이므로, 내가 그를 포함한 나의 가족에게 늘상 활기차고 좋은 태도를 보이려 애쓰는 이유는 철저하게 은폐된 이기주의에 기인한다. 그러니까 나는 그를 포함한 나의 원가족과 함께 있을 때 가장 가식적인 형태를 띤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나는 매 순간 스스로가 가짜 행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므로, 그 메울 수 없는 괴리에 문득문득 자괴감을 느끼고, 그래서 웬만하면 그들과 한 공간에 있지 않으려 한다. 원가족에 대한 나의 본심은 은근히 이별을 종용하면서도 결코 본인의 입으로는 헤어짐을 말하지 않으려는 비겁한 애인의 모습과 닮아 있다.
오빠와의 통화는 근 10년 만에 나의 본심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며 마무리되었다. 그 순간 심장이 평소보다 약간 빠르게 뛰었고, 약간은 서글프고 불편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혹시 이대로 그가 나를 버려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카페에 앉아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오늘도 쓰다 만 창을 열어 글을 완성해 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역시 가족이란 대하기도 어렵고, 생각만 해도 골 아프고, 글로 쓰기에는 더더욱 버거운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나의 기대가 무색하게 오늘 이른 아침부터 오빠에게 카톡이 왔다. 조폭 영화에서 조직을 빠져나가려는 조직원이 왜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지에 대한 인과 관계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바로 가족의 무시무시함이다. 최소한 손가락 하나 정도는 잘라 내어 놓아야만 기대라도 해 볼 수 있는 것이 가족을 벗어나는 일이다. 조폭들이 서로의 관계를 가족으로 정의 내리는 데 집착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가족 얘기는 어차피 말해봐야 뾰족한 결론이 나는 류도 아니니 여기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