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을 읽는 법

삶으로서의 읽기

by 감우

당연히 독서 생활에 대한 유의미한 법칙 따위를 담은 글은 아닙니다. (내가 뭐라고 그런 글을 쓰겠나요!)


요즘 부쩍 독서에 맛을 들이고 있다. 틈만 나면 책을 펼치고 읽는데, 나는 책을 읽는 행위를 단순히 쉬는 시간에 즐기는 여가활동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책을 읽고 있으면 늘 뭔가 해야 할 일이 떠오른다. ‘글을 써야 하는데’라든가 ‘집안일을 좀 해야 하는데’라든가 ‘인스타그램에 뭐라도 올려야 할 텐데’ 같은 것들. 그래도 역시 놀고 먹고 쉬는 것이 가장 좋으므로, 대부분은 다른 할 일들을 제쳐놓고 책을 읽게 된다.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대부분은 머릿속에 질문거리를 가득 품고는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리곤 했다. 그러다 보니 책을 그다지 자주, 많이 읽지는 않았고, 독서에도 꽤나 에너지를 소모해야만 했다. 요즘은 그냥 읽는다. 독서란 이상하게, 하면 할수록 더 많이 하게 된다. 독서 활동도 역시 관성의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책을 읽다 보면, 읽는 와중에 자연히 다른 책으로 줄기가 파생되어 또 다른 책이 읽고 싶어 진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다가 단테의 <신곡>이 궁금해진다거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다가 생전 관심도 없었던 그의 소설이 읽어 보고 싶어 진다거나 하는 식이다. 아무튼 독서의 과정이 이런 식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의 추천 도서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의식적으로 그런 콘텐츠에 나를 노출시키지 않으려 노력한다. 안 그래도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이 산더미인 데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흥미를 끄는 읽을거리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거기다 남이 추천하는 도서라든가 죽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도서 리스트라든가 베스트셀러 목록 같은 것을 끼워 넣자고 들면 과부하가 걸려 독서 자체에 질려 버릴지도 모른다. ‘어차피 평생 가도 다 읽지 못할 텐데, 차라리 아예 읽지 말아 버리자!’ 같은 약간은 비뚤어진 오기 같은 것이 생길 것만 같다.


비슷한 이유로 어느 순간부터는 책을 선물하는 일도, 책을 선물 받는 일도, 그다지 즐기지 않게 되었다. 모든 일은 (그것이 단순히 책 한 권을 골라 읽는 일이라 할지라도) 자발적인 의지에 따라 이루어진 행동이라야만 어떤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그러니 남이 읽을 책을 내가 골라준다는 것은 대단한 오만이고, 내가 읽을 책을 남이 골라준다는 것은 내 쪽에서 사양이다. 나는 확실히 청개구리 성질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서, 남이 하라고 하면 그게 무엇이든 이상하리만치 격렬하게 하기가 싫어진다. 누군가 내게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만 해요!’라고 한다면 나는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을 결정하는 거요?’ 하고 되묻고 싶어 진다. 이런 상황은 꼭 책에 대한 것이 아니더라도 꽤 자주 접할 수 있어서, 얼마 못 가 ‘그 사람 말이 영 틀린 것은 아니었군!‘하고 깨닫게 되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 그때 진작 그 사람의 추천을 들었더라면!‘하고 후회한다거나, ’ 그때 너무 격렬하게 거부한 것이 조금 민망한걸?‘하는 생각 따위는 결코 하지 않는다. 시기가 조금 늦어진다 하더라도, 자발적인 의지가 발동하는 순간이 바로 나에게 허락된 때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나 스스로도 어딘가 좀 꼬인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어쩔 도리가 없다.


퇴사 후 백수 신분을 유지하던 1년 여의 시간 동안 나름 치열하게 먹고살 궁리를 하며 보냈다. 그 궁리에도 나름의 기준은 있었다. 더 이상 월급만이 목적이 되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을 하고 싶다는 것,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것. 이러한 기준들을 손에 쥐고, 무직이라는 현 상태의 엄혹함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사업성의 여부나 성공 확률은 차치한 채로 나 자신의 기호를 점쳐 보는 시간들을 보내 보았다. 그렇게 길어 올려진 키워드는 ‘책’이었는데, 그래서 처음에는 단순하게도 서점을 차려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사유의 과정을 통해, 그리고 서점원이 된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 역시 서점 사장이 되고 싶지는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대신 삶으로서의 읽기에 더욱 관심이 생겼다. 어떠한 목적의식도 없이, 오직 자발적인 의지에 따라, 자신만의 독서 세계를 가꾸어 나가며, ‘읽기’라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의 삶의 형태가 궁금해졌다. 독서를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로 볼 수 있다면, ‘책’이라는 동일한 키워드를 가지고도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서점이 아닌 무언가를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있습니다.

*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을 읽고 바로 이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을 읽었는데,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의 마지막 문장이 필립 로스의 소설에 대한 것이라면 이럴 때는 어떤 운명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이렇듯, 완전히 다른 책이지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듯한, 약간은 기묘한 순간을 꽤나 자주 맞닥뜨리게 되는데, 이게 또 독서의 다른 재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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