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여름
여름이 싫은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벌레다. 나는 각종 기어 다니는 것들에 공포를 느끼는 유형이라 땅 속의 모든 생명이 살아나는 여름은 고역이다. 겨울에 태어나서인지 확실히 추위보다는 더위에 약한 것도 여름이 싫은 이유 중 하나다. 아침저녁으로 샤워를 해대도 항상 꿉꿉함이 따라다니고, 방금 씻고 나가 몇 걸음만 걸어도 다시 땀이 나니 영 비효율적인 데다 에너지 낭비도 심한 계절이 아닐 수 없다. 아침에 먹은 음식을 깜박하고 냉장고에 넣지 않은 날이면 퇴근 후 돌아와 어김없이 상한 음식을 마주해야 한다. 당연히 불쾌지수도 높아지고, 열대야가 오면 밤에 잠들기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여름은 사계절 중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어디선가 풍겨오는 모기향의 매캐한 냄새를 맡는 순간이면, 언제나 묘한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게 된다. 모기향 냄새를 맡으면 나의 의식은 어느새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거나, 처음으로 친구들과 떠났던 해변가 민박집의 밤 풍경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모기향 냄새를 맡으면 나도 모르게 “아, 여름이 왔구나!” 소리 내어 말하게 되고,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묘한 안정감이 들기도 한다. 모기향 냄새는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동시에, 어디에 있든 일상을 떠나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향이다.
모기향의 돌돌 말린 회오리 속에는 여름의 에너지가 담겨 있다. 울창한 진초록 잎사귀들 사이로 넘치는 생명력을 내뿜으며 행인을 압도하는 나무들 , 정수리부터 달궈 결국엔 살갗을 벗기고 마는 뜨거운 햇살, 여러 휴양지에서 터져 나오는 활기찬 웃음소리, 바닷물의 짜고 비릿한 맛 같은 것들이 모기향이 타들어가는 동안 끊임없이 솟아오른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넘쳐나는 여름의 에너지가 모기향과 함께 타오르는 것이다.
며칠 전 퇴근길, 길목에 자리한 호프집 앞을 지나다가 올해 첫 모기향 냄새를 맡았다. 나는 또다시, 나도 모르는 새에, “아, 여름이 왔구나!”소리 내어 말하며, 여름 휴가지 옵션을 머릿속으로 굴리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모기향은 여름이 싫은 나조차도 여름을 기대하게 하는 힘이 있다. 모기향 냄새를 맡는 순간이면, 역시 여름도 사랑할 만한 구석이 있다고 느끼게 되고, 그렇게 무더운 여름 속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