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점의 역할과 쓸모에 대한 고찰
플로팅 간판을 걸고 소매점을 운영한 지 6개월,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소매점을 브랜드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브랜딩은 사업체의 고유성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이다. 고유성이 인정되어야만 비로소 '브랜드'라는 명칭을 얻어낼 수 있다고 가정했을 때, 자체제작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닌 소매점은 어떻게 고유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다소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면 나는 올리브영을 떠올린다.
한국 시장에서 월마트는 이마트를 대체할 수 없었고, 시코르는 올리브영을 대체할 수 없었다. 물론 이마트도 올리브영도 다양한 pb상품을 제작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트와 올리브영이 대체불가가 된 이유는 pb상품 때문이 아니다. 소매점의 브랜드성은 고유한 편집과 기획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결국 소매점은 오직 '지적자본'을 통해서만이 브랜드가 될 수 있다.
소매점이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명확한 정체성, 양질의 상품 편집, 고유한 기획력이 필요하다.
플로팅은 정체성을 '읽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로 잡았다. 읽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할까. 나름대로 정리해 본 결과를 공유해 본다.
1. 독서 용품(인덱스, 책갈피, 북클립 등)에 관심이 많다.
2. 기록 및 쓰기에 대한 욕구가 있다.
3. 데스크테리어에 관심이 많다.
4. 집에 머무는 시간이 비교적 길다.
5. 공간 꾸미기에도 관심이 많을 확률이 높다.
나는 위의 데이터를 대부분 북스타그램 활동을 통해 얻었으므로, 플로팅의 타깃 고객은 넓게는 '읽는 사람', 좁게는 '북스타그래머'로 보아도 무방할 테다.
편집숍의 쓸모는 (당연하게도) 편집에 있다. 여러 상품들을 나름의 기준에 따라 편집해 둔 상점인 편집숍이 제공하는 본질적인 서비스는 시간이다. 마음에 드는 상품 하나를 찾기 위해 들여야 할 방대한 시간을 대리해 주는 것이므로, 나와 취향이 잘 맞는 편집숍을 찾았다면, 당신은 사실상 상품이 아니라 시간을 샀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편집숍이 거대 플랫폼과의 가격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다시 올리브영으로 돌아가 보자. 올리브영에서 파는 상품들은 쿠팡에서도 살 수 있고 네이버에서도 살 수 있고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자사몰 또한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같은 상품을 굳이 올리브영에서 구매하는 걸까. 올리브영에서만 제공하는 묶음 기획, 올리브영에서만 진행되는 세일, 유사 상품을 한 번에 보고 비교할 수 있는 올리브영의 편집 형태 등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테다. 스타일난다 재직 시절을 떠올려 보더라도 올리브영 전담 부서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결국, 제조업체가 아닌 유통 업체의 고유성은 기획에서 나온다고 보아도 좋을까?
다만 상품 하나만 제대로 터져도 단번에 브랜드로 급부상할 수 있는 제조업체와 달리, 유통 업체는 자본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업종일 수 있다. 물적 자본이 충분하지 않은 플로팅은 지적 자본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정리한 결론은 여기까지다. 언제나 그랬듯, 위 내용은 나의 답이므로, 당신의 답과는 다를 수 있다. How to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그랬듯 여러 사고들을 치고 또 실패하며 알아낼 일이다.
나는 여전히 길 위에 있다.
나의 유일한 바람은, 이 길을 가능한 오래 걷는 것이다.
길의 끝을 기다리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