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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판매 사이

2025.04.03. 목

by 감우

월/수 이틀을 쉬어서 그런가? 일이 끝이 없는 목요일. 결국 야근이다.


어제는 인벤타리오 문구 페어에 다녀왔다. 반가운 브랜드들을 만나고, 새로운 브랜드를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근데 솔직히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입장하는 순간부터 이미 살짝 질리긴 했어요 ^^ 행사 첫날인 데다 평일이라 사람이 많으면 얼마나 많겠나 했지만, 진짜 미어터져 주금. 아예 못 보고 지나친 부스도 더러 있고, 사진도 생각보다 못 찍었지만, 그래도 탐나는 예비 거래처 몇 곳을 건져 왔으니 역시 가길 잘했다는 결론이다.


"요즘은 모든 독자가 다 스스로 저자가 되어버린 것 같아. 그럼 독자 노릇은 누가 하지?"
<읽을, 거리> 89p, 김화영 인터뷰 중

지지부진 읽다 보니 두 달여에 걸쳐 완독 한 <읽을, 거리>는 시의적절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이자 김민정 시인의 글을 엮은 책이다. 나는 김민정 시인도 생소하고 김화영 시인(겸 번역가)도 생소했는데, 아무튼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김화영 인터뷰였다. 읽고 쓰는 삶에 대한 담론이자 강론과도 같았던 인터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을 하나 고른 것이 바로 위의 인용문이다. 나는 해당 문장이 무척이나 공감되었고, 거푸 떠올릴수록 자못 심각한 문제로 여겨졌다. 쓰는 사람이 지천이요, 그중에서 책을 냈다는 사람이 거반을 넘어가고, 지금 이 순간에도 작가를 꿈꾸는 사람 셀 수 없으리라. 그럼에도 여전히 출판계는 오랜 망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작은 서점들은 저마다 죽는소리를 해대니 이게 대체 무슨 기괴한 일이냐 말이다.


이 이야기를 왜 꺼냈는가 하면, 인벤타리오에 다녀온 후 요즈음의 시장 상황도 비슷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창작자가 되어버린 것 같아. 그럼 소비는 누가 하지? 판매는 누가 하고?" 단어 몇 개를 바꿔 대입해도 어색하지 않은 문장이다.


챗GPT와 함께하는 지브리풍 그림 만들기가 온 나라를 휩쓸고 있는 지금, 한편에서는 창작자에 대한 모독이냐 변화된 세상의 흐름이냐를 두고 한 치 양보도 없이 열띠게 싸우는 장면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쯤에서 우리는 창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것만큼이나 쉽고 간단하게. 하지만 팔리는 물건을 만들고, 팔리는 글을 써내는 일은 완전히 다른 문제가 된다.


각 잡고 벌이는 문구 대잔치에 다녀와 보니 사실 상품군은 다 엇비슷한데 그 엇비슷한 상품군이 어찌나 다양하게 생산되어 나오는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인산인해를 헤치며 열심히 눈알을 굴리다 문득, 이 판에서 굳이 나까지 창작자가 되는 것이 맞나 싶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플로팅만의 상품이 있어야 한다고 느끼고, 내 안에 상품에 대한 아이디어가 없는 것도 아니긴 하나, 사실은 내가 직접 창작을 하지 않는 쪽이 플로팅을 더욱 빛나게 할런지도 모르겠다. 판매자는 소비자의 대리인이다. 소비자의 눈으로 바라보며, 엇비슷한 상품들 중 눈에 띄는 제품을 고르는 것이 우리들 직무인 것이다. 하지만 자체 제작 상품을 개발하게 된다면 내가 과연 지금 같은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만들 거면 제대로. 어설프게 생색만 낼 작정이라면 판매자 노릇이나 똑바로 하는 편이 낫겠다.

IMG_5036(1).JPEG 인벤타리오 줄이 이랬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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