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02. 월
오늘은 진짜 이상한 날. 골목이 역대급으로 조용했고, 손님도 진짜 별로 없었는데, 큰 손 고객님들이 와 주신 덕분에 일요일인 어제와 비슷한 매출을 기록하게 되었다. 이건 진짜 운수 좋은 날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을 듯. 아무튼 대체로 조용한 하루였기 때문에 나름 일도 쏠쏠히 했습니다.
오늘 한 일 :
1. 선물 뽑기 비행기 접기
2. 문장 키링 제작하기
3. 수입건 리스트 정리
4. 포장 봉투 도장 찍기
5. 30분 책 읽기!
쓰고 보니 별거 없네 ^^ 문장 키링 제작이 시간을 많이 잡아먹습니다. 이번 수집도 제 마음엔 드는데 고객님들 눈에는 어떨지 이제 지켜봐야겠죠?!라고 쓰는 와중에 스토리 올린 거 보시고 네 개나 택배 주문해 주신 고객님 등장! (미쳐따 미쳐따~~)
지난주 수요일은 독서 모임 날이었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 모임 책이었는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이 가능하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플로팅 손님들을 떠올렸다. 손님들에게는 직접적인 대가(돈)를 받기 때문에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말은 기본적으로 역설이긴 하지만, 직접적인 대가 외에는 그 무엇도 바라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이다. 일테면 플로팅의 물건을 조심히 다루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나 디피를 원상태 그대로 보존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 같은 것, 나에 대한 친절 혹은 상냥한 인사 같은 것들을 나는 손님들께 바라지 않는다. 내가 이 말을 했더니 서점원들이(서점원 독서 모임이다)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사장 마인드네."
그 말을 듣고 그래 이건 내 가게고, 내(돈으로 산) 물건들이니까 그럴 수 있으려나?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사장 마인드라기보다는 내가 좀 괴팍한 소비자이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나는 집이 제일 좋은 본투비 집순이 재질의 인간이라 내가 집 밖으로 나오는 이유는 딱 두 가지밖에 없다.
1. 돈 벌러
2. 돈 쓰러
그러니까 집도, 가게도 아닌 그 어딘가에서의 나는 언제나 지갑을 열고 배회하는 소비자가 된다.
소비자일 때 나는 판매자들과 잡담을 나누고 싶지 않고, 그들에게 애써 친절을 베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며, 일처리가 답답하면 짜증이 난다.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데는 다시는 가고 싶지 않고, '눈으로만 보세요'따위의 문장을 보면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해서 괜히 더 만지고 싶다. (눈으로만 볼 거면 굳이 오프라인 매장을 왜 오냐고!) 또한 나는 어떤 순간에도 사람을 보고 지갑을 열지는 않는다.
소비자일 때 나는 구매를 결정한 물건을 매장에서 보기만 하고 인터넷 최저가를 찾아 사지 않는다. 구매에 대한 결정이 빠르고, 방문한 가게에서는 웬만하면 구매한다. 이건 예의나 체면 때문이 아니고, 내가 돈이 많아서도 물론 아니고, 단지 내가 뭔가를 살 작정을 했을 때에만 나가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하릴없이 이 가게 저 가게를 돌아다니며 '아이쇼핑'이라는 말장난 같은 단어를 갖다 붙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지 않고 구경만 하고 나가는 고객들을 은근하게 힐난하는 문장을 보게 되면 화가 난다. 내 기준에서 구경만 하고 나오게 되는 경우는 찾고 있는 물건이 그곳에 없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물건이 없어서 돌아 나오는 것조차 눈치 봐야 하는 가게라면 나는 절대 그 가게의 고객이 될 생각이 없다.
고객들은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사서 나가면 그만이고,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으면 그냥 돌아 나가도 그만이다. 고객이 점원에게 굳이 친절해야 할 필요도 없다. 고객으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단 하나의 행동은 돈을 내지 않고 물건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다. 그 외에는 뭐든 해도 된다. 나는 그것이 고객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내가 고객을 왕으로 모시겠다는 소리가 아니라,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요구할 정도로 엉망은 아니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준다면 좋겠다. 소비자일 때의 나 또한 왕으로 모셔지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다만 고객의 권리를 누리고 싶을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문득, 나의 결정적 한계를 체감한다. 나는 정말이지, 오직 내 안에서만 뭔가를 길어 올릴 수 있는 인간인가 보다. 나는 확실히 대중을 사로잡을 그릇이 못 된다. 그러나 나 스스로를 디깅하는 일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으므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것은 제법 특출나게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