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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국도 후기 및 새 모험의 서막

2025.06.19. 목

by 감우

서국도에 다녀왔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줄 서는 거 정말 딱 질색이라 이번엔 늦게 갔다. 인벤타리오에서 오픈런 시도했다가 끝도 없는 줄을 보며 입장도 전에 질리고, 그렇게 들어갔는데 이미 핫한 건 다 품절이라는 소리에 현타맞고, 내가 혀 빼물고 아 됐다 이제 뭐가 더 남았어도 안 볼란다 하고 나올 때쯤 다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인지 사람이 조금 빠지기 시작했는데, 그때쯤 슬렁슬렁 입장하는 사람들을 보며 '아, 현자가 나타났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므로 이번엔 나도 현자가 되기로 했다. 행사는 7시 마감인데 나는 4시에 도착했다. 입장 줄은 전혀 없었고, 행사장도 '와 진짜 토 나오네'수준으로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도서전이 이러니 저러니 말이 많고, 책은 뒷전이고 굿즈 팔이들만 한가득이라느니 하면서 힐난하는 소리들이 있었지만, 나는 출판 업계와 독서인들의 미묘하게 비틀린 우월감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나름 소신 발언이고, 반박 시 (당신에게는) 당신 말이 정답이다. 책은 관심 없고 굿즈 사고 싶어서 도서전 간다고? 그게 뭐 어떤가. 굿즈 팔아서 번 돈으로 책 한 권이라도 더 찍을 수 있다면 출판업계도 선순환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막상 가 보니 실상은 딱히 굿즈판인 것도 아니었다. (좌로 보나 우로보나 산처럼 쌓여 있는 책탑 틈바구니에 굿즈는 잘 보이지도 않더구먼) 더군다나 한 공간에서 그렇게나 다양한 책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되겠는가.


다만 한 가지, 오랜만에 도서전을 방문했더니 새삼스럽게 서점원 시절이 그리워졌다. 서점 다닐 때는 도서전 안 와도 국내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책들이 알아서 내 앞으로 밀려 들어왔었는데 말이지. 그래서 오히려 도서전의 존재가 더욱 귀하게 느껴졌다. 나 또한 흥미로운 책을 제법 많이 발견했다. 전부 사고 싶었지만 내 집에 쌓여 있는 (읽지 않은) 책탑들과 더 이상 꽂을 데도 없이 터져나가는 책장을 떠올리며 참고 참았다. 나름 엄선하여 두 권의 책을 구매했다.


또 한 가지 도서전에서 얻어온 배움은 책도 영업이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1차적으로 놀랐던 점은, 생각보다 책 추천, 책 설명을 직원에게 요청하는 분들이 많았다는 점. 2차로 놀랐던 점은, 직원들이 설명을 너무 맛깔나게 잘해주신다는 점. 3차로 놀랐던 점은, 책 추천을 하는 것도 받는 것도 즐기지 않는 나조차도 옆에서 귀동냥으로 주워듣다 보니 어느새 홀린 듯 빠져들어 그 책이 읽고 싶어 지더라는 점. 그래도 저는 역시 타인의 추천보다는 스스로 고르고, 판단하고, 실패하고, 성공하는 과정 자체가 독서라고 생각하지만요. 아무튼 책 추천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깨닫고 왔습니다.


도서전의 분주한 틈바구니를 헤매고 있을 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쿠팡이츠가 소매점을 대상으로 새로운 배달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고. 플로팅도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직접 와서 설명을 해 주신다기에 일단 알겠다고 했다. 오늘 바로 영업 사원이 방문하였다. 고민이 되는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 플로팅의 물건들을 과연 매장가보다 비싼 돈을 주고 배달까지 해가며 사는 분들이 계실까?

2) 수수료 떼고 나면 얼마 남지도 않는데 과연 이게 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그래도 나는 해 보기로 했다. 이전 일기에서 언급했듯 나는 새로운 도전이나 변화를 자발적으로 나서서 즐기는 타입은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누군가 새로운 제안을 먼저 해 준다면 운명이다 생각하고 일단 해 보는 편이다. 나의 이러한 선택이 지팔지꼰의 결과로 이어진 적이 셀 수도 없지만, 나는 질리지도 않고 또 내 팔자를 꼬는 선택을 한다. 해 보기도 전에 이러니 저러니 어쭙잖은 예측을 하며 빼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마침 그때 서점원 시절이 떠오른 것도 큰 몫을 했다. 내가 일했던 서점도 배달 서비스를 운영했는데, 주문 방식도 굉장히 번거롭고 배달비까지 추가로 붙는데도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쏠쏠히 주문을 넣어 서점원들끼리 '이 사람들은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냐'갑론을박을 벌이곤 했기 때문이다.


막상 하기로 하고 보니 잘만 활용한다면 꽤 재미나게 운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플로팅 근처에 거주하시는 분이 주 고객층이 될 테니 플로팅 신규 고객 유입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갑자기 조금 설레기 시작했다. 아직 사업은 시행되지 않았다. 주문이 들어오면 정말 신기할 것 같긴 하다.


아참, 오늘 근처 사장님들과 이야기를 하는데 하나같이 6월은 이상할 정도로 손님이 없다는 말씀들을 하셨다. 플로팅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 다소 위안이 되었다. 그런데 왜지?

IMG_7658(3).JPEG 도서전 갔다가 문지 부스에서 집어 온 한 장의 시. 마음에 들어서 플로팅 입구에 붙여뒀는데, 혹시 이 시 제목을 아시는 분..댓글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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