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친구는 레벨이 달라요~
책의 기묘함에 대해서는 서점원 회고록에서도, 플로팅 일기에서도 몇 번이나 다룬 적이 있다. 하지만 상품으로써의 책에 대해서는 언제나 희의감을 가지고 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플로팅을 일 년 넘게 운영하며 그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오늘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책은 정말 지독히도 돈이 안 된다. 책을 집필하는 작가, 책을 편집하는 편집자,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 책을 판매하는 서점 모두가 돈을 못 번다고 아우성이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돈 생각하면 이 일 못하죠.' 멋진 말이다. 세상에는 돈을 넘어서는 가치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조금 더 냉정하게 상황을 살펴보기로 하자. 책을 집필하는 작가, 책을 편집하는 편집자,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 책을 판매하는 서점은 전부 장사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더라도 책이라는 상품을 시장에 내놓고 값을 매겨 돈을 받고 파는 이상 그것은 궁극적으로 장사가 된다. 그런데 장사하는 사람들이 돈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것은 사실상 직무 유기에 가까운 말 아닌가.
하지만 시장의 엄혹함과는 별개로 책이라는 상품은 정말 정말 정말로! 돈이 안 된다. 이건 사람들이 책을 사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책을 팔아봤자 남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책은 시장에서 자연도태되어 세상에서 사라져야 마땅할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암, 마땅히 그래야지!"라고 엄포를 놓지 못한 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게 바로 책의 기묘한 신비인 것이다. 적확한 단어 혹은 문장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 미묘함을 잘만 이용할 수 있다면, 책은 최고의 상품이 될 수도 있다는 게 나의 1차적 결론이다.
소비자들은 (책을 사지 않더라도) 책을 파는 공간을 높게 평가해 주는 경향이 있다. 소비자들은 (책을 읽지 않더라도) 책에 대해 대체로 관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서점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3년가량 책을 취급하는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은 소비자들의 책에 대한 애정도는 책을 얼마나 읽는지, 책을 얼마나 사는지와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꾸 '책을 사는 행위'에만 매몰되어 이미 책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블랙컨슈머 취급하는 실수를 범하고 마는 것이다. 올해 도서전에서 굿즈가 인기몰이를 했던 것은 책 자체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책에 대한 애정을 공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도서전에 대해 여러 말들이 있었지만, 매일이 품절대란이었던 도서 관련 굿즈의 폭발적인 인기를 고려해 보았을 때, 비즈니스적 관점에서는 책에 대한 마음을 상품화하는 것의 수요가 확실히 입증되었다고 봐도 좋겠다. 그럼 이제 돈도 안 되는 책은 내다 버리고 굿즈 장사만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럴 리가. 책이 없으면 굿즈도 없다. 사람들은 굿즈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책을 사랑하는 것임을 명확히 하도록 하자.
플로팅은 다양한 상품군을 취급하고 있다 보니 소비자들의 책에 대한 편애에 가까운 애정을 조금 더 빠르게 캐치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안에서도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책에 대한 저마다의 취향이 있고, 호불호가 있고, 선호하는 구매처가 있고, 다양한 도서 수급의 방식이 있을 테지만, 대중이 책을 미워하고 있지 않다는 것만큼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나 너그러운 평가를 받는 상품이 과연 존재했던가. 존재할 수 있는 일이던가.
책은 정말 돈을 생각하고는 팔 수 없는 상품이다. 하지만 나는 수익을 내지 못하면 죽는 게임의 자발적 참가자가 되어 여기에 있다. 그러니까 무슨 수를 써서든 책을 돈으로 바꿔야 한다. 그러자면 책을 신봉해서는 답이 없고, 책을 이용해야만 한다. 책을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과감히 버리고, 책을 플로팅의 마케팅 포인트로 이용하기로 한다. 팔리지도 않고, 팔려봤자 남는 것도 거의 없는 책을 내가 꾸준히 매입해 주고 있으니 책도 나한테 이용당하는 것쯤은 충분히 이해해 줄 테다. 그러니까 나는 책을 내세워 감성도 팔고, 철학도 팔고, 이야기도 팔아 플로팅을 옆집보다 매력적인 가게로, 언젠간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가게로 포지셔닝해 볼 작정이다.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친구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는 격이랄까? 천박하대도 어쩔 수 없다. 이건 정말 생존 게임이라고. 적어도 나에게는.
이 정도로 이용할 가치가 있고, 기꺼이 내게 이용당해 줄 만한 상품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오직 책뿐이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책이 최고의 상품일 수밖에. 얘는 그야말로 레벨이 다르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