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타개하기. 무슨 수를 써서든

2025.07.22. 화

by 감우

어제 약간의 심각성을 느끼고 오늘은 출근하자마자 좀 더 구체적인 돈의 흐름을 정리해 보았다. 개인 지출, 가계 지출, 가게 지출의 고정 지출 목록을 분류하여 정리하는 것이 첫 번째 할 일이다. 돈을 기록하고, 정리하고, 예산을 정하는 일은 내가 잘하는 일 중 하나다. 다만 퇴사 후 1년의 무직 기간을 통과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조금은 바뀌었다. 돈의 흐름을 10원 단위까지 기록하며 완벽하게 통제해야 직성이 풀렸던 시간을 지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었다. 돈을 한 푼도 벌지 않고 있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였을까? 통제한다는 감각이 얼마나 얄팍하고 연약한 것인지 비로소 깨닫게 되어서였을까? 그즈음부터 가계부를 쓰지 않았다. 처음에는 불안했으나 이내 적응했고, 역시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해졌고, 내가 가진 돈의 양과 상관없이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그 덕분에 플로팅을 운영하면서도 불확실성이 야기하는 불안과 공포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유를 찾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절망할 필요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다시 통제한다. 다시 긴장한다. 다시 웅크린다. 이 분야는 내가 전문가다.


내가 월세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과 맞닥뜨린 일은 지금이 살면서 두 번째다. 첫 번째는 우리 부부가 돌연 호주로 워홀을 떠났다가 3개월 만에 빈손으로 돌아왔을 때의 일이다. 살 집은 있어야 하니 일단 집을 구하긴 했는데 당장 다음 달 월세 낼 돈이 없었다. 당시 남편과 나는 둘 다 직장도 없는 채였다. 극한의 상황에 몰리면 패닉이 올 것 같지만 오히려 차분해진다. 이마를 짚고 허둥대봤자 아무것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면 본능적으로 에너지부터 아끼게 된다. 우리는 (월세 낼 돈도 없으면서) 카드로 밥을 사 먹고, 냉장고를 사고, 이력서도 썼다. 다행히 둘 다 금세 취직을 했다. 월세는 낼 수 있겠다고 한시름 놓기 무섭게 카드값의 압박이 찾아왔다. 내가 입사를 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임직원 대출을 알아보는 일이었다. 아직 회사에 적응도 하기 전에 비상구에 앉아 은행원과 숨죽이며 통화를 하던 날이 아직도 선하다.


다행히 금세 대출이 나왔다. 대출을 받아 카드값을 메꾸고 나니 비로소 안도가 되었다. 하지만 진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숨만 쉬어도 나가야 할 돈의 목록이 하나 더 추가되었고, 신입이었던 나는 월급이 적었고,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들을 해결하고 나면 남는 돈이 하나도 없었다. 그 짓을 2년간 했다. 명절이니 생신이니 주요 경조사가 다가올 때마다 스트레스와 예민함이 폭발했다. 그즈음 우리는 부부싸움을 자주 했다. 돈 얘기가 나오면 반드시 싸움이 났다. 그래도 명절이나 부모님의 생신을 빈 손으로 보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2년을 납작 엎드려 남 줄 돈만 챙기며 보내다 보니 조금씩 월급이 올랐고, 조금씩 살 만해졌다. 나를 위한 돈을 조금이지만 쓸 수 있게 되었고, 가끔은 비싼 식당에도 갈 수 있게 되었다. 5년 상환이었던 대출금을 1년 반 가량 빠르게 갚았다. 그 후로도 1년 정도 회사를 더 다녔는데, 그때는 정말 돈 모으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때 그냥 내가 쭉 회사를 다녔다면 아마 지금쯤은 돈도 제법 모았겠다 싶다. 아니, 그전에 무턱대고 호주로 가지만 않았다면, 호주에서 죽은 듯이 일만 해서 목돈을 만들어 왔다면, 내 인생은 분명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적어도 30대 중반이 되어서 다시 긴축에 돌입할 일은 없었을 거라는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었고, 그 어떤 선택도 돌이켜 후회하는 것은 없으니 억울할 것도 없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금전적인 위기를 타개하는 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매우 성공적으로 극복해 낸 경험 또한 가지고 있다. 이건 나의 대표적인 자랑 중 하나다. 물론 지금은 그때와는 또 상황이 다르지만, 어쩌면 더 좋은 상황일 수도 있다. 수입을 10만 원이라도 더 올리려면 꼬박 1년을 기다려야 했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내일 갑자기 대박이 날 수도 있으니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문제를 '정확히'파악하는 것이다. 플로팅 장부만 열심히 기록하다 오랜만에 모든 돈의 기록을 펼쳐놓고 정리했더니 오히려 희망이 생겼다. 생각보다 최악은 아니었고, 곰곰 생각해 보니 총알이 한 발뿐인 것도 아니었고, 플로팅은 여름이 지나면 반드시 매출이 다시 오를 거라고 확신하니까. 몇 년 전의 상황보다는 확실히 나은 상황이다. 7-8월은 위기가 예상되지만 8월의 일은 8월에 걱정하기로 한다. 7월은 아껴둔 총알을 쓰지 않고도 해결이 될 듯하다.


플로팅 오픈 후 처음 겪는 가장 강력한 위기 앞에서 할 생각은 아닌 듯하지만, 어쩐지 올해 안에 무조건 흑자 전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각성해 버렸으니까. 통제왕이 돌아왔으니 단 한 푼의 새는 돈도 용납하지 않고 버는 족족 긁어모을 테다. 나는 쓰는 것도 잘 쓰지만, 안 쓰는 건 더 잘한다. 플로팅은 진짜, 지금부터 시작이다. (솔직히 지금까지 내가 좀 나이브했지~)

IMG_8426(1).JPG 인스타에 올린 사진 ㅋㅋㅋㅋ 일기는 비장하지만 실상은 이런 일들을 합니다 ㅋㅋㅋ


ps: 나의 불안을 잠재우려 이른 시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느지막이 손님들이 들어오시기 시작하더니 얼떨결에 이번 달 화요일 중에서는 최고의 화요일이 되었다. 총알은 확실히 좀 더 아껴 두어도 좋을 것 같다. 장사 진짜 재밌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절망의 파도에서 한계를 시험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