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산다. 오늘만 산다.

2025.09.04. 목

by 감우

하루의 휴무를 날리면 타격이 생각보다 크다. 신체적 피로도에 대한 타격이 아니라 심리적 타격이라고 해야 하나. 휴무를 충분히 쉬거나 혹은 충분히 즐겁게 보내지 못한 다음 날은 약한 우울 상태가 된다. 오늘이 딱 그런 날. 기계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하긴 하지만, 머릿속에는 잡생각이 한가득 들어차서 은은한 짜증이 종일 차오르는 하루였다. 이런 날은 칼퇴라도 하면 참 좋으련만, 그것도 내 맘 같지 않다는 게 슬픈 현실이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문득, 배가 고파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평소보다 일찍 나온 데다 늦잠을 자버린 탓에 하루 종일 먹은 게 빵 부스러기 아주 조금밖에 없다. 쿠팡에 시켜놓은 간식을 종일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도 배송이 오지 않았다. 무슨 배까지 곯아가며 이러고 있나,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심신이 지치는 날이면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나는 어디쯤에 와 있는 걸까.' 혹여나 정상을 코앞에 두고 하산하는 실수를 범하게 될까 봐, 계속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는 내가 있다.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은 저주보다는 축복일 때가 많다. 나는 솔직히, 미래를 조금도 알고 싶지 않다.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면 참 좋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도저히 버텨낼 재간이 없어서, 미래를 아는 것이 두려워진다. 불확실성이 나를 나아가게 한다. 내일을 알지 못하기에 오늘을 살 수 있다.


'플로팅 곧 대박 날 것 같아.' 요즘 부쩍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예언일 수도 있고, 헛소리일 수도 있다. 나는 어느 쪽에도 베팅하지 않길 선택한다. 그냥 오늘을 산다. 오늘만 산다. 잘 되면 좋겠지만, 잘 되지 않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준비를 한다.


오랜만에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인건비는 나오냐?" 마침 오늘은 은은한 짜증이 차오르던 날이라 뾰족한 짜증이 솟구쳤지만 애써 웃으며 농담처럼 답했다. "인건비 나오겠어? 하하하" 아빠의 말투가 걱정스럽게 바뀌었다. "그럼 회사 다닐 때가 더 나은 거 아니냐?" 나는 괜히 더 오버를 하며 "당연히 회사가 더 낫지, 하하하하" 했다. 애써 마음을 다잡다가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문득,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싶을 때가 있다. 그래도 오늘을 살고 있으니, 내게 오늘이 주어졌으니, 오늘을 산다. 오늘만 산다.


때론 결과가 전부일 때도 있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은 패자의 자위일 때가 더 많다. 보상받지 못하는 노력이 셀 수 없고, 열심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하며, 최선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나 자신에게만큼은 떳떳할 수 있도록. 그것만이 나의 유일한 판단 지표라 믿고 나아간다. 살기 위해 그렇게 한다. 이 헛헛한 과정들을 지속하는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 수밖에 없다.


나는 어디쯤에 와 있는 걸까. 궁금하지만 궁금하지 않다. 아무튼 할 수 있는 데까지 한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간다. 내게 허락된 가장 먼 곳으로 간다. 그 끝에 뭐가 있든, 그곳까지 갔다는 게 중요한 거라고 믿으며, 오늘을 산다. 오늘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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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키링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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