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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우 Feb 07. 2020

불효자와 불효자가 결혼을 하면 전우애가 생긴다

당신이 불효자라 참 다행이야

우리는 일 년에 부모님을 딱 다섯 번 찾아뵙는다. 추석, 설, 생신 x2, 어버이날. 결혼했더니 이게 두 배로 늘어서 총 10번의 가족 행사가 있다. 가끔 기타 행사가 있을 때는 대리 효도 용납 불가 슬로건을 내세우며 각자 알아서 챙긴다. 진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필수 행사만 챙기는데도 우리는 매일같이 둘이 마주 앉아 우는 소리를 한다. 명절이라도 다가오면 거의 한 달 전부터 우리 부부의 암울 주간이 시작된다. '아프다고 가지 말까?' '우리 집이라도 가지 말까?(서로)' 머리를 맞대 봐도 무슨 수가 있나. 가는 수밖에.

이러다 한 번씩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자식을 낳았는데, 그 자식이 이다음에 커서 이러면 어쩌지? 순간 아찔해지며 나의 효심 없음에 스스로 놀라곤 한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남편과 내가 같이 불효자라는 것!


그래서 우린 서로의 가정환경이나 명절에서 있었던 고충을 비교적 솔직하게 나누는 편이다.

"이번에 어머님 그 말씀하실 때 진짜 짜증 났어." 

"이번에 아버님 계속 나한테 뭐 물어보시는 거 좀 불편하더라. 그런 건 알아서 좀 처리해"

혹은

"너네 집은 말이 너무 많아서 한번 갔다 오면 머리가 지끈거려"

"형이 우리 집 자꾸 오고 싶어 하는 거 불편하고 싫어"


예상하겠지만 대체로 전자는 내가, 후자는 남편이 자주 하는 말이다. 우리도 결혼 초반엔 서로 다른 가정환경에서 야기되는 여러 문제들이 있었다. 그리고 꽤 심각했었다. 가족 얘기만 나오면 얼굴을 붉히고 싸우던 기간이 1~2년쯤 되려나? 그때는 마치 내가 가족을 대표해 전쟁터에 나온 군인마냥 방어기제가 대단했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고! 그 시기를 지나며 결혼을 후회하기도 했고, 진짜 뭐하는 짓인가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지만, 결국 우리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로. 그런데 솔직하게 말하다 보니 우리 둘 다 어지간한 불효자라는 걸 깨달아 버린 거다. 니 가족도 불편하지만 내 가족도 불편하고, 너네 집 가기 싫은 만큼 우리 집도 가기 싫었다. 그 정도가 서로 비슷했다.


우리는 명절이나 가족 행사를 맨날 퀘스트라고 칭하며 몇 퍼센트 클리어했다, 몇 퍼센트 남았다 이야기하고, 명절 퀘스트를 모두 끝내고 돌아온 날이면 무조건 비용에 상관없이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우리 이번에도 수고했다! 하면서

그게 '우리'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참 자주 한다. 힘든 걸 서로 공감해 줄 수 있어서, 어디 가서 말하면 불효자라고 욕할 만한 말을 부부가 마주 앉아 서로에게 쏟아낼 수 있어서. 그게 가능하다는 현실에 늘 감사하다.

가족 때문에 싸우던 기간을 지나 이렇게 한 마음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날이 오고 보니 진정한 동지애가 생기는 느낌이랄까? 명절이 한번 지나가고 나면, 우린 명절 증후군을 함께 겪으며 조금씩 더 끈끈해지고 돈독해지는 느낌이다. 이번에도 '우리' '함께' 해냈다! 만세를 부르며 폭식을 하는 게 진짜 퀘스트의 마무리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면, 그래 우리 집이 그런 면이 있지, 우리 부모님이 좀 그런 편이지 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도 말을 안 하기 시작하면 결국 탓을 상대방에게 돌리게 된다. 시댁이 싫으면 시금치도 먹기 싫어진다는데, 남편은 말할 것도 없지. 여전히 시댁 혹은 처가댁이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많고, 그건 노력한다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너무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남녀가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너무 다른 환경의 두 가정이 합쳐진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라 그저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살벌하게 싸우던 몇 년 전을 생각하면 무슨 대단한 효자 났다고 그렇게 싸워댔는지 모르겠다.

가끔 이 남자가 진짜 효자였으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곤 하는데, 나는 그럼 정말 못 버티고 이혼했을 것 같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우리 부모님은 무조건 옳아! 어디 감히 우리 가족한테!라고 생각하는 남자라면, 절레절레 절대 못 살지. 그래서 오늘도 감사해 마지않는다. 당신이 불효자라는 사실에.

부부끼리는 이러지 말아요ㅠ 우리끼리는 알아 줍시다..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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