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우주가 가족으로 가득 채워졌던 시절이.
희미해진 기억들 사이에서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조각들이 있다.
아빠 혼자 지옥에 갈까 겁이 나 아빠 팔을 붙들고 교회에 나가야 한다며 새벽까지 울어대던 기억
아빠가 분당으로 일자리를 구해 떠나기 전날 첫 이별의 슬픔으로 밤새 숨죽여 울었던 기억
매년 여름 강원도로 가족 여행을 떠났던 기억, 그리고 아빠가 물놀이 후 끓여 준 라면과 직접 튀긴 오징어 튀김과 고기 튀김의 기름지고 고소한 맛
할머니와 미용실 놀이를 하다 할머니 머리를 진짜로 잘라 버렸던 기억
가을이면 밤을 따러 가고, 뒷산으로 칡을 캐러 다니던 기억
도심의 빌라에 살면서도 땡감을 깎아 곶감을 만들던 엄마의 모습. 적당히 꾸덕꾸덕해졌을 때 빼먹는 완벽한 반건조 곶감의 달콤하고 촉촉한 맛
눈 오는 겨울날 집 앞 비탈길에 포대자루를 가지고 나가 눈썰매를 타던 기억.
여름이면 양계장에서 토종닭을 사다가 백숙을 만들어 몇 날 며칠을 먹었다.
겨울에는 돼지등뼈를 한 아름 사다가 아빠의 레시피로 특별한 등뼈찜을 만들어 또 몇 날 며칠을 먹었다.
언젠가의 나는, 세상에서 우리 집이 가장 화목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언젠가의 나는, 엄마 같은 여자가 되어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나 나 같은 딸을 낳고 싶다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가족이 싫어지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가족이 짐처럼 느껴지게 된 건.
나는 왜, 나의 하나뿐인 가족이 끔찍해졌을까.
나도 그 이유를 알고 싶어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