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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삽시다

2025.10.19. 일

by 감우

오늘도 많은 손님들이 플로팅을 방문해 주셨고, 어제에 비하면 매출은 현저히 적지만, 아무튼 이번 달 중에서는 제일 장사 잘된 한 주가 되었다. (정말 사람 일 모를 일)


매주 일요일이면 다음 주 나가야 할 지출액을 정리해 보는데, 다행히 다음 주 줘야 할 돈은 벌어들였으니 다행인 걸까? 남 줄 돈 벌기 위해 일하는 인생이 되...


얼마 전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가 있다. 종종 만나 술을 왕창 퍼먹던 사이인데, 어느새 나는 장사꾼이 되고, 친구는 엄마가 되어, 만나자는 말조차 쉽게 내뱉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사는 게 왜 이렇게 빡센거야..."

"우리가 빡세게 살려고 그래서 빡센 걸까?"

따위의 대화를 거의 다섯 시간에 한 마디씩 디엠으로 주고받으며 이 상황이 조금 웃기기도 했다. 그러나 '빡세게 살려고 그래서 빡센 걸까?'라는 친구의 말이 조금은 맞는 듯도 했다. 조금 대충 살아도 좋을 텐데, 그게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나의 추구미는 여전히 대충 살기.


요즘 부쩍 아이 생각이 커지고 있는데, '니가 또 살만해졌니?' 하는 자조적인 자문을 해 보게 된다. 조금이라도 삶이 편해질라치면 꼭 어떤 구렁으로 나를 밀어 넣고야 마는 이 기묘한 습성이 또 발동한 것이려나. 그렇지만 나는 아직 전혀 살만하지 않은데.


오늘은 라이브데이. 오랜만에 상품 소개 라이브를 하기로 했다. 어제 한 손님이 내게 말했다.

"사장님 그냥 막 하세요. 왜 부담을 가지고 그러세요."

나는 손뼉을 치며 맞다고 맞다고 했다. 사실 저 말이 정말 정답이다. 몇 명 보지도 않는데 뭔 부담을 갖고 난리. 그냥 막 하면 되지. 역시 삶은 대충 살기가 짱이라니까.

IMG_0739(1).JPEG 오늘 새로 쓴 플로팅 칠판

ps: 지난함의 연속이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나는 자영업이 적성 중에 적성인 듯하다. 남의 말은 뒤지게 안 듣고, 어떤 제도 안으로 편입되는 것에 갑갑증을 느끼고, 조직의 논리에 좀처럼 순응하지 못하는 내가 이 일이 아니면 무슨 일을 하겠어. 그런 의미에서 적성만을 놓고 보자면 작가도 잘 맞았을 듯 싶다. 내게 좀 더 집요한 끈기와 빛나는 재능이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러니 주어진 일이라도 열심히 해야지. (나를 보고 있으면 지팔지꼰도 팔자소관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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