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주년

2026.02.27. 금

by 감우

10년 전 오늘 결혼을 했다. 돈도 없고 직업도 없고 가진 것은 오직 젊음 뿐이던 시절이었다. 10년 전 오늘. 나는 이런 이야기를 남편에게 했더랬다. 지금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10주년에는 우리 집 마당에서 파티 같은 리마인드 웨딩을 올리자고. 그러니까 그때는 꼭 다이아 반지를 사서 제대로 프러포즈를 해 달라고.


나는 여전히 집도 없고 그러니 마당은 있을 리 만무하다. 여전히 프러포즈를 받지 못했으며, 그러니 당연히 다이아 반지도 가져 본 적 없다. "내가 10주년에도 그지일 줄이야." 자조적인 멘트가 절로 나오는 10주년이 아닐 수 없다.


10여년 전의 어느날, 남편의 자취방에서 함께 밥을 먹다가, 남편은 씹다 만 음식을 우물거리며 "우리 결혼할까?" 하고 말했다. 나는 별 고민도 없이 "그래" 하고 답했다. 애들 장난처럼 결혼을 약속했고, 애들 장난처럼 결혼식을 올렸으며, 애들 장난처럼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어릴 때 결혼을 해서일까? 지금도 얼마간은 애들 장난처럼 살고 있는 듯하다.


1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어떤 면에서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어떤 면에서는 변하지 않은 것이 아무것도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변했다. "내가 10주년에도 그지일 줄이야."말하는 내 얼굴에는 자연히 쓴 웃음이 떠오르지만, 사실 나는 우리의 10년을 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10주년을 맞이해 주마등처럼 돌이켜 보게 되는 지난 10년은 우리의 방황과 불안과 열망과 욕망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고비를 함께 넘었던가. 얼마나 많은 기쁨을 함께 나눴던가. 서로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어 주었던가. 켜켜이 쌓인 시간의 무게가 다이아 반지보다 훨씬 값지다는 데에는 조금의 의심도 끼어 들 자리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릴 때 결혼하길 잘한 것 같다. 덕분에 우리의 결혼식은 순수와 낭만으로 가득했으니까. 10만 원짜리 웨딩드레스를 사 입고 버진로드를 걸었다. 만 원짜리 면사포에 진주를 빼곡하게 달아 준 건 나의 어린 신랑이었다. 대부분 학생이었던 친구들은 가진 돈을 다 털어 축의금을 냈다. 천 원 단위로 끊기는 축의금이 제법 많았다. 가진 것은 오직 젊음 뿐이라 세상의 계산기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종이꽃을 접어 장식한 결혼식장에서 어린 부부와 어린 하객들은 온마음을 다해 축하를 받고, 온마음을 다해 감사를 전하면 그뿐이었다. 원룸에 현관도 없던 신혼집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역시 젊음 덕이었다. 젊음이 얼마나 큰 재산인지 몸소 체험한 셈이다. 우리가 함께 디딘 모든 발자국이 우리의 성취가 되었고, 그렇게 우리는 함께 자랐다.


어린 부부가 어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사회와 세상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남들과 똑같은 길을 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자꾸만 방향키를 틀었다. 대책도 없이 핸들을 틀다 보니 오늘, 이곳에 와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지금, 여기에 있는 내가 제법 마음에 든다. 그러니 영원히 다이아 반지를 가지지 못한다 해도, 다소 무모했던 10년 전의 오늘을 후회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앞으로의 10년은 또 어떤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모험을 떠나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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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조악하고 아름다웠던 그때 그시절

ps: 플로팅은 별일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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