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복귀의 날

2026.03.12. 목

by 감우

3일간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했다. 출근 전에 운동도 하고 미용실도 가고 꽤 똑 부러진 복귀를 하였다고 생각하며 뿌듯함을 안고 가게 문을 열었으나

응? 왜 내 책상에 컴퓨터 없어?

남편이 병원에서 일하겠다고 컴퓨터 꼬옥 챙겨 오라더니 2박 3일 동안 꺼내 보지도 않음. 미용실 예약 시간 때문에 운동 끝나고 집 못 들려서 오만 짐 바리바리 챙기느라 컴퓨터 챙기는 거 깜박함. 그렇게 컴퓨터 없는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도 뭐, 아이패드와 아이패드 키보드가 있으면 대부분의 업무는 할 수 있습니다. 제게는 다행히 그 두 가지가 다 있죠! (지금 일기도 아이패드로 쓰는 중)


병원 간다고 3일이나 문을 닫았으니(그중 하루는 정기 휴무날이긴 했지만) 상황 보고를 살짝 해 보자면, 다행히 최악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았고 그러나 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어서 지속적인 추적 관찰 및 약물 임상 치료가 필요하다는 결론. 그렇게 병명 없는 난치병 진단을 받고 퇴원하였습니다.

아~ 이 병약하고 손 많이 가는 남자여.... 어쩌다 내게로 왔느뇨...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2박 3일간의 병원 생활은 꽤 재미있었다. 남편과 이렇게 24시간 붙어 있을 기회도 거의 없거니와 간호사 선생님들이 하달해 주시는 검사 스케줄에 따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미로 같은 병원을 쏘다니는 것도 사실 조금 재미있었고, 텀이 생기면 병원의 부대시설들을 구경하며 간식도 사 먹고 커피도 사 먹고 토막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병원에서의 하루는 무한 대기의 연속인지라 그 시간에 책을 원 없이 읽을 수 있어 또한 좋았다. 장소가 병원이라는 것만 빼면 마치 리조트 여행을 온 기분이었는데 그 느낌이 참 좋아서 한 3박 4일 리조트 밖으로 나갈 필요 없는 완전 휴양 여행을 계획해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마냥 좋기만 했냐 하면 물론 그건 아니었다. 큰 병의 가능성을 미리 듣고 하게 된 입원이었기에 사실은 나도 제법 긴장이 되었다. 검사실에 들어간 남편을 문 밖에서 기다리며 최악의 상황을 머릿속에 수차례 굴려 보기도 했다. 다만 나는 남편 앞에서는 절대 불안을 티 내지 않는다. 남편은 내가 마냥 철없이 병원 생활을 하나의 놀잇거리로 생각하며 즐겼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건 아니라는 소리다. 남편은 불안도가 기본적으로 높은 편이라 나는 그 불안에 동조하고 공감하는 대신 오히려 더욱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이건 내 나름의 배려이지만 남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남편은 나를 공감 장애 환자쯤으로 생각할 때가 많은 것 같지만 가뜩이나 불안한 사람 옆에서 같이 불안해해 주는 게 과연 도움이 될까 싶다. 그래서 나는 그저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는 것으로, 때론 부러 더 밝고 철없게 행동하는 것으로, 내가 옆에 멀쩡하게 버티고 있다는 것, 그러니 너는 나를 마음껏 의지해도 된다는 것, 그리고 너도 그렇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편이 이 글을 읽고 내가 안정형 부인이라는 사실을 이제 그만 인정하길!


오늘 단골손님이 놀러 오셔서 한바탕 수다를 떨었는데, 어쩌다 대화가 선호하는 인간 유형이라는 주제로 흘러가게 되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오랜만에 생각을 해 보게 되었는데, 나는 역시 나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좋은 점과 좋지 못한 점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극복이 필요한 것은 극복을 위해 노력하고, 자랑할 점은 당당하게 자랑할 줄도 아는 사람. 약한 면을 드러내는 것이 사실은 강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 아름답지 못하더라도 진실에 다가서려 노력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그게 어떤 사람이든 매력적이다. 나와 취향이나 성격이 맞고 안 맞고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냥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본인이 생각하는 나와 본인이 추구하는 내가 심각하게 어긋나 있는 사람들을 조금 혐오하게 되는데, 병원에서 읽은 책 <급류>의 인물들이 딱 그러해서 거의 내생에 최악의 책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급류>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아무튼 웬만하면 읽지 마시길 강력히 권합니다.

첫 입원의 흔적! 두 번은 없길 바라지만 두 번째에는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ps: 손님이 적었고, 복귀 날부터 장사 조지나 했지만 뭐, 그 정도는 아닌 걸로...

조용한 목요일의 플로팅을 방문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올리며!

플로팅 일기는 내일 다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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