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서 다행이야.
결혼 전 몇 번의 연애를 거쳤지만, 내가 만났던 모든 남자들은 술을 좋아했다(물론 나도).
데이트의 시작이 무엇이었든, 마지막은 언제나 술집에서 마무리되곤 했다.
술을 못 마시는 남자를 처음 만나 나는 적잖이 당황했었다. 술도 안 마시면 대체 뭘 해..?
연애 초반에는 술 마시는 사람이 1차, 2차, 3차를 가듯, 카페를 3차까지 간 적도 있다. 여기서 더욱 충격적인 것은, 남편은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카페를 기본 2차는 필수로 간다는 것이다(유유상종은 사이언스).
출퇴근길에 인터넷에서 잡다한 것들을 주워 보는 게 취미인 남편이 그날도 또 뭘 보고 온 모양이었다.
나에게 살며시 다가와서는 조용한 목소리로 "근데, 내가 찐따야..?"하고 물었다.
뭘 본 거냐고 심드렁하게 대꾸하니 게임을 안 좋아하고, 술을 안 마시고, 친구도 안 만나고, 회사-집-회사-집을 반복하는 유형의 사람을 찐따라고 명명해 놓은 글을 읽어 주었다.
나는 말했지. "딱 너네?"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이 단순한 문장이 담고 있는 의미는 꽤나 포괄적이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말은 친구를 자주 만나지 않는다, 귀가가 늦어질 일이 없다, 갑작스럽게 생기는 약속이 없다, 주변에 술을 즐기는 친구가 없다(안 놀아줌), 예상에서 벗어나는 사건 사고에서 자유롭다 등등으로 읽힐 수 있다. 그리고 다른 말로는 노잼이다..? ㅎㅎㅎ
술을 안 먹는 남자와 살며 느낀 가장 큰 장점은, 마음고생할 일 없이 잔잔하고 평온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술이 원인이 되어 야기되는 문제들이 얼마나 많은지, 술을 안 먹는 남자와 살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일 년에 개인적인 외출을 하는 날이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인 남편을 보며 "나도! 이! 집에! 혼자! 좀! 있고! 싶다고!! 제발! 좀! 나가라고!!!!!" 정색을 하고 소리치던 나의 불만은 사실상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재택근무를 통해 대부분 해소되었다.
그러면 이젠 장점뿐이냐고? 그럴 리가.
내가 술 먹고 실수라도 조금 하는 차엔 유구무언의 자세로 그의 모든 비난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평생에 단 한 번도 술을 취할 때까지 마셔 본 적이 없는 그는 만취한 자의 변명을 들어줄 리가 만무하다.
결혼 6년 차쯤 되면, 야릇한 분위기를 잡는 데 어느 정도의 술기운은 필수인데 말이지, 알코올의 순기능조차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라면 단점!
좋은 안주를 앞에 두고 기분 좋게 한 잔 걸칠 수 있는 대작 메이트를 집 안에서 찾는 일은 이미 포기한 지 오래고.
남편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요즘 찐따 같은 남자가 일등 남친, 일등 신랑감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하던데
찐따 같은 남자와 6년째 결혼 생활을 유지 중인 경험자로서 한 마디 하자면, 무엇이든 일장 일단은 있는 거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결혼을 해야만 한다면 그것은 뜨거운 사랑 때문도 아니요, 종족 번식을 위한 것도 아니요, 그저 편안하고 마음 맞는 인생의 반려자를 찾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입장에서 볼 때
나는 역시, 인싸보다는 아싸가, 힙스터보다는 찐따가 더 좋다.
여전히 술이 고픈 날, 남편을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쓸모없는 남편이라고 잔 불평을 토로하지만, 이 자리를 빌려 이 글을 읽고 있을 남편에게 고백하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라서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