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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우 Apr 28. 2021

때리는 아빠, 맞는 오빠, 지켜보는 엄마

누가 가장 잘못한 걸까

오빠는 어린 시절부터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고를 치곤 했다.

뭔가를 훔친다거나, 줄기차게 학교나 학원을 빼먹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고

좀 커서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사채빚을 끌어다 쓰거나, 직장을 3개월 단위로 때려치우며 사람을 미치게 했다.

학교 교문 앞에 내려줘도 어느 순간 딴 길로 튀어 버리던 오빠는 결국 고등학교 졸업장도 따지 못한 채 중졸의 성인이 되었다.


아빠는 남의 시선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오빠가 시험을 망치거나, 학교를 안 나가거나, 사고를 치고 돌아오면, 아빠는 꼭 창피하다는 말을 했다.

아들의 입장이 아닌, 자기 입장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때는 그게 이상한 줄도 몰랐다.

본인의 기준이나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가차 없이 매를 들었다.

그것은 사랑의 매라기엔 조금 가혹했는데, 폭력과 체벌 사이를 아슬하게 줄타기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집안에 타작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맞으면 안 할 법도 하건만, 오빠는 죽기 직전까지 맞고 그다음 날 나가서 또 사고를 쳤다.

때려도 소용이 없으면 그만 때릴 법도 하건만, 아빠는 지치지도 않고 또 매를 들었다.


엄마는 강한 사람이었지만, 또 옛날 사람이기도 했다.

가장의 권위를 중요하게 여겼고, 언제 어디서나 남편을 높여 주던 아내였다.

자식 앞에서 남편을 무시하거나, 남편의 의견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인지 아빠가 폭력에 가까운 체벌을 감행할 때도, 엄마는 그저 방관자의 모습일 때가 많았다.

지금에서야 엄마는 그 순간을 후회한다고 말한다. 나라도 맞고 있는 아들 앞을 가로막아 줬어야 했다고.


나는 맞는 게 끔찍하게 싫어서 때린다고 하면 그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다.

어쩌면 체벌이 교육적으로 잘 맞았던 것은 나였다.

아빠가 폭력적인 사람이었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는데,

중학생이 될 때까지 나는 부모님이 싸우는 장면을 한 번도 보지 못 했고, 아버지가 인사불성으로 술에 취한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며, 이유 없이 매를 드는 일은 절대 없었다. 그 이유가 가끔 억지스럽다거나 부모답지 못할 때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나는 살면서 딱 한 번 아빠에게 맞은 적이 있는데, 엄마한테 소리소리 지르면서 대들다 결국 아빠가 매를 들었고, 그 체벌에 대해 나름대로 합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적어도 나에게 아빠는 폭력적인 아버지는 아니었다.


엄마도, 아빠도, 체벌을 망설이지 않았지만, 늘 그 이전에 예고가 있었다. 어떤 행동을 하면 때리겠다는 사실을 고지한 후에, 그 예고를 착실하게도 지켜 나갔다.

그래서 오빠가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때린다고 했잖아, 근데 왜 또 맞을 짓을 해서 쳐 맞고 지랄이야'

원망은 오빠에게로 향했고, 온 가족의 부정적인 기운을 오빠가 한 몸에 받아냈다.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나뿐만 아니라 부모님까지도 '너만 없었으면'하는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했는지 모른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아빠와 오빠의 사이는 개선되지 못했다.


어쩌다 집안의 중재자 포지션을 맡게 된 나는 본의 아니게 모두의 속마음을 들을 기회를 얻었는데,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해답이 보이지 않았다.

네가 잘했으면 맞을 일도 없었을 거라는 아빠의 의견과, 체벌로 문제를 해결하려던 건 폭력에 불과하다는 오빠의 의견이 팽팽하게 갈려 도저히 접점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오빠가 안쓰러워 오빠의 입장을 대변해 주다가도, 30대 중반이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잔사고를 치는 오빠를 보고 있으면 또 아빠가 이해되기도 한다.

이 엉킨 실타래의 시작은 대체 어디일까.


분명한 건, 오빠를 향한 체벌이 해결해 준 건 아무것도 없으므로, 숱한 체벌은 결론적으로 폭력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나의 하나뿐인 오빠는, 어떠한 교육법을 적용했어야 했을까. 무조건적인 지지와 신뢰를 주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하지만 신뢰라는 것이 한 쪽만 준다고 형성될 수 있는 것인가?


폭력으로 물들었던 오빠의 학창 시절과, 모든 순간을 숨죽이고 목격해야 했던 나의 어린 시절, 최선이라 여기며 부모의 역할을 다 한다고 믿었던 부모님의 젊은 날들은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됐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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