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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우 Nov 01. 2021

역지사지, 반면교사도 자꾸 하면 독이다.

자기 확신이라는 양날의 검

십여 년 전 어느 날,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너 반면교사가 무슨 뜻인지 아니?

그게 뭔데요?

반대의 면을 보고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고 배운다는 뜻이야.

......

너는 나처럼 살지 말라고.


그날 이후 반면교사라는 사자성어를 가슴 깊이 새기고, 내 첫 번째 문장으로 삼으며 지금껏 살았다.

역지사지, 입장 바꿔 생각하고

반면교사, 반대의 면을 보고도 배움을 얻는다.

이 두 가지 사자성어면 세상 이해 못할 것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모두를 이해하려 애쓰며 살았다.


어릴 적의 나는 고집이 세고, 세상 내가 제일 잘난 줄 착각하며 살던, 가진 것 없어도 자신감만큼은 서울대를 가고도 남을 안하무인의 인간이었는데 아버지에게 반면교사라는 사자성어를 배운 뒤로, 어쩐지 남의 반대 면을 보고 배우려는 마음만큼 나의 반대 면 또한 그만큼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나는 온전한 사람인가?

위와 같은 사색은 나를 겸손하게 만들어 줬고, 또한 나를 성장시켰다.

그러나 반면교사를 가슴에 품고 산 지 십여 년이 흐른 지금, 내 머릿속을 가장 많이 맴도는 말은 자기 확신이다.


세상에 틀린 것은 없다. 다름이 있을 뿐이다. 주장이 강하고 주관이 뚜렷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곤 했던 나는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것만 같다. 자꾸만 의심이 들고 작은 것에도 하염없이 흔들린다. 말을 하는 게 점점 두려워진다. 요즘은 오히려, 얼토당토않는 것조차 당당하게 큰 목소리로 주장하는,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사람들이 부럽기까지 하다. 세상에 틀린 것은 없고, 다름만이 있을 뿐이라면, 어쩌면 나 하나쯤은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도 좋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역지사지를 하려면 남을 꼼꼼히 관찰해야 한다. 저 사람은 왜 저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저 사람은 어떤 성장 배경을 가졌을까, 저 사람은 어쩌다 저런 행동을 하게 되었을까. 꼼꼼히 타인을 관찰하다 보면, 누구에게나 그들만의 사연은 있기에, 세상의 기준이나 도의적 잣대로는 그른 행동으로 보이는 것조차 왠지 이해가 될 때가 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굽이길을 돌고 돌아 나는 다시 안하무인의 내가 그리워졌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거라고 목에 핏대 세우며 아무것도 아닌 일을 얼굴 뻘게지며 우겨대는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그 확신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어쩌면 그게 자신감인 것은 아닐까? 세상 모두가 남을 꼼꼼히 관찰하며 사는 것은 아닌데, 누가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 놓고 왜 너는 나를 그렇게 꼼꼼하고 면밀하게 보아주지 않느냐고 따질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제법 자주, 나는 야속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어쩌면, 내가 이해받고 싶어 남을 이해하려 애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나는 그냥 내가 이해해줘도 괜찮지 않을까?


어쩐지 두서없는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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