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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현 Aug 20. 2021

헤이,시티즌

8월의 금요일 

오후 8시 4분, 50초, 51초...


금요일 저녁시간 사무실에 혼자 남아있다.


창문을 열었다.

사무실 한켠만 빼고 조명을 껐다.

맥심 화이트골드 한잔을 탔다.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이면지로 쓸만한 종이를 추려낸다.

유투브에서 오늘 듣고 싶은 음악을 골라본다. 


'선우정아 헤이,시티즌 뭐였는데...'


나같은 사람은 많고 많아 시티선셋을 자동검색해준다.

소리를 키워본다.


"Hey, citizen.

두분이 빨개져서는 건조함에 얼굴을 부비네."


가사 따라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부비다,

마스크를 떨어트렸다.


그러다, 가방 속에 '그것'이 보였다.


다시 읽어봐야지 했던 가방 그의 편지다.

생일에 받았던가.

지난 6월 이후 다시 펼쳐본다.


'......'


한장에 빼곡이 적힌 글자가 눈에 다시 박힌다.


현아, 

요즈음 나는 서운한 채로 살아.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삶이야.

투닥투닥 다투면서 좋은 표현으로 옥신각신,

그런 것도 좋지만 나는 이 편이 더 편한 것 같아.

요사이 즐겨타는 자전거가, 예전만큼 잘 구르지도 않고

페달질도 힘겨워져 바꿔타볼까도 그만탈까도.

한편 나의 사랑하는 것들도, 페달질에 힘겨워

옛일을 떠올려보고 어렴풋이 그리워하곤 한다.

어쩌면 나는 사랑하지만, 노력하지만, 침체되어 있는 건 안리까,

이건 네게도 마찬가지. 그런 느낌을 받곤 해.

그렇지만 이런 날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한 구석에서

서서히 피어나는 우리 아들, 그리고 너와 나에게

속삭이는 좋은 말을 해주고 싶다.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같이 누워도, 돌아누우면 그만인 너와 나지만,

마음만은 돌아눕지 않게 노력하자.

너의 생일을 너와 너의 어머니께 감사해.

밤사이 내린 서리가 세상을 덮고, 남은 것이 

내 머리 위에도 조금은 내렸던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2021. 마흔 한번재 생일을 맞는 그대에게.


아, 그렇네.

피곤한 일상이었다. 


코로나19로 몸은 갇혔고,

육아로 정신이 갇혔다.


회사-차-주차장-집

도돌이삶이 지속되고 있다.


어느 날은 놓고 싶기도 했다. 

일을 하고 있으니 아무 것도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돈을 벌어야 한다며 나를 일터로 몰고 있는 듯 남 탓만 해댔다.


그래, 요새 난 그랬다.

마음이 돌아 눕고 있는 중이었다.

등 뒤로 붙는 아이의 따뜻한 체온을 애써 외면 중이었다.

말없이 돌아누운 엄마의 등을 보는 것만큼 

어린 나를 힘들게 하던 것이 또 있었던가.


음악을 껐다.

컴퓨터 전원을 껐다.

사무실 보안점검일지를 쓴다.

퇴근.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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