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육아일기
목욕을 마치자 시우는 코코넛 오일을 자기 손에 듬뿍 (덜어)달라고 말했다. 이전에 목욕을 한 후 엄마가 새로 사온 코코넛 오일을 발라주었던 것과 그 냄새가 아주 좋았던 기억 덕분이었는지.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그 냄새를 마치 입에 넣고 쫍쫍 거리는 것처럼 코를 킁킁거리며 만족해했다. 그런 녀석을 보며 너 또한 나처럼이겠구나 여겼다.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그것보다는 길을 오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의 냄새에 반응하는 나에게 코는 후각은 시각과 청각보다 우선한다. 내 의지라기 보다 자연스레 그것에 집중하는 나를 본다. 하루 온종일 집에 있는다면 아마 오분의 일은 후각으로만 살고 있을지도 모를일이다. 그런 내가 코로나 이후 2주째 냄새를 못맡고 있다. 후각이 사라지니 미각도 사라져 매운맛과 신맛 이외에 흔히 풍미라고 일컫는 재료들의 온전한 맛들을 느낄 수가 없다. 아, 이 얼마나 재미없는 삶인가. 아이 둘의 대변을 치우는 일도 재미가 없고 삼겹살을 구워도 재미가 없다. 하물며 술은 말해 뭣하랴,
아침에 일어나 꾸역꾸역 아이들을 보내고 코에 뭐가 달라붙었는지 컹컹대며 오전을 보내고 나면 찾아오는 허기에 물말은 밥과 청양고추 하나 둘 속에 밀어넣는다. 하릴없이 폰만 쳐다보다가 오후 두세시가 되면 벌겋게 달아오른 귓덜미 그리고 찾아오는 두통으로 남은 하루를 보낸다. 아이들 끼니는 엄마가 보내준 밑반찬에 그럭저럭 먹이면 되지만 그것도 계속할 수 없어서 레시피가 필요없는 씨리얼과 면류를 곁들여 2주일을 보냈다.
어제는 청소기에 몽이의 똥이 들어왔다. 그건 똥인지 초콜렛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아주 작은 얼룩같은 거였는데_몽이는 여느 고양이와는 다르게 자기 항문을 핥는 습관이 없다!_평소같았으면 손으로 만져보고 확인했겠지만. 누적된 스트레스로 어차피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맛을 봐도 모를테니까 하고. 그런데 청소기 필터에서 미세하게 그 냄새가 나는 게 아닌가! 아니, 이게 그렇게 기쁠 일인가. 청소기 먼지통을 끌어안고 그 냄새만 하염없이 맡고 확인하고 맡고. 오늘 오후엔 노을보러 간 베란다에서 옅은 화분의 냄새를 맡고는 실실 쪼개며 아내에게 달려가 고했다. “이제 뭔가 조금씩 돌아오나봐!”
저녁무렵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재우고 우산을 들고 바깥으로 향했다. 아니 내딛었다가 더 훌륭한 표현같다. 비가 오는 처음에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흙내음, 그 어떤 냄새보다 그것을 맡아보고 싶어서. 지렁이 기어나오는 것마냥 스물스물 그렇게 나왔다. 있는 힘껏 들이키고 내뱉고를 한 스무번쯤은 한 것 같다. 어서 돌아와야지 내 코야. 후각아, 그래야 엄마가 보내준 쑥국 먹어보지 않겄냐. 봄을 맞이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