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육아일기
그러니까(떠올려보니) 2012년 여름이었을거야. 아내에게 줄 선물로 만든 노래였는데, 그 때 제목은 ‘현의 노래’였어. 2013년 발표할 당시에 ‘다음에 우리’라는 제목으로 바꿨는데 이유는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구였기 때문이었지.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노래에서 뿐 아니라 생활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구가 “다음에, 다음에” 가 아닐까 생각해봤어. 특히 아이들에 대한 대답으로 말이야.
캠프를 떠났어. 삼촌 둘이 대동하고 이번엔 시우도 같이. 틈만 나면(이건 뭔가 서러울 땐데) 엄마 보고싶어를 연발하면서도 기특하게 자.알. 놀았지. 시우는 그래, 방금도 아내와 통화하며 그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지만 나눠주기 아까운 것들, 과자나 장난감 등을 하나만 주라고 하면 “미안해에~” 하면서 귀엽게 거절하지. 이번에도 삼촌들한테 그런 모양들을 보이면서 잘 넘겼어. “화났어!, 삐졌어!”도 빠져선 안될 유행어였지. 다리가 아프고 등이 가려워 자꾸자꾸 안기고 옷을 훌러덩 벗었던 것만 기억에 남아. 은수는 베테랑 같이 술술 지나갔지만 아무래도 동생이 있다보니 많은 걸 향유하지는 못했을 테야. 물론 나도 밥하고 멕이고 하느라 하늘 한번 못쳐다봤어. 그래도 아이들이 즐거우니 그걸로 되었어.
소안도라는 완도에서 배로 1시간여쯤 거리에 있는 섬으로 간 이유는 그 섬에 살고 계신 할머니 때문이야. 나와 은수는 지난번 초여름에 한번 뵀고, 같이 간 삼촌이 여행하다 신세를 진 연유로 인연이 돼 방문하게 되었지. 잠시 들러 인사를 하고 애들도 씻기고 급한 일도 보고 겸사겸사, 뭔가 거점인 셈이었어. 그 집에 쪼코라는 강아지 한마리가 살았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열흘도 안된 새끼 두 마리도 함께인 거야. 은수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할머니 곁에서 강아지들과 놀았지. 시우는 낯을 가려 문 앞에서 서성거리다 울다 안기다를 반복하고 겨우 씻고 나왔어. 지나는 동네 할머니가 “사우(사위)요?” 라고 물어봤는데 그냥 웃어넘겼지. 자제분들이 자주 오지는 않은 모양이야. 지난번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문어며 삼치며 고추장이며 하는 것들을 싸주시는데, 거절할 수기 없었어. 지난번에 은수용돈을 십만원 넘게 받아서 그걸 방 한켠에 두고 나왔는데 나중에 그걸 발견하고 서운해도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고 말씀하시는데 어찌 또 거절을 할까. 정이 많아도 보통 많은 게 아니야, 선물로 가져간 양갱이며 포도며 되받아오고 거기다 팩우유와 사과, 배까지.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여온 영감처럼 돼버렸어, 문어랑 삼치는 먹고 또 먹었지만 지금도 우리집 냉동고 안에 가득 차있다지.
중간중간 어디로 사라지는 찌오삼촌은 아마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뭔가를 찍고 담아내고 있을거야. ‘산책’이란 단어로 아이들에게 해명해야 할 정도로 찌오삼촌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만갔지. 호 삼촌이 중간에 나가는 바람에 내가 불을 지피거나 음식을 만들 때는 여지없이 애들 둘을 보는 보부라고 해야하나. 여튼 생각보다 잘 봐, 사랑도 주고. 찌오삼촌이 나중에 그랬지, 이번엔 ‘다음에 우리’요. 템포 빠른 노래가 이거밖에 없더이다, 에. 그거 이거랑 잘 안붙을텐데, 혼자 속으로 생각만 하고 말로 거들지 않았어. 소안도 할매와 나중에 헤어질 때 흘러나오는 (약속을 담아) 다음에 다음에 우리 라는 문구가 나올 땐, 아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어. 이렇게도 쓰이는구나 싶어 순간 뭉클했지. 이제 곧 아흔인 할매와 오늘 이별하는 마당에 흘러나오는 다음에 우리라는 말이. 두 눈꼭 감고 아이들 하나 하나 안아주며 보내는 그 거친 손이. 선하디 선한 그 눈빛이. 나는 노래에 그걸 담아내지 못했지만 어떤 순간들이 담아냈지. 노래가 이제 좀 완성이 된거 같아,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 마음 떠올리며 불러보고 싶어.
그래서, 아주 고마워. 이번 여행은 술도 얼마 못묵고 잠도 많이 못자고 모기로 고생도 많이 했지만 뭔가 나에게도 큰 울림이 있었지. 아이들 못지 않에 나도 즐거웠단 말이야. 삼촌들에게도 많이 고맙소, 애아버지가 셋이나 있으니 애들도 얼마나 좋았겠소. 시우가 말이 좀 늘었어, 찌오삼촌 호삼촌이란 단어를 배우고 이제 얼마간 그 세계에서 살겠네. 보고싶다는 말을 너머 그립다라는 말도 알려주려네. 시간이 지나면 나도 이 마음 스러질까봐 퇴고도 없이 보내네, 툭 던지는 진심인 마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