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이후로 드라마는 거의 보질 못했다.
요사이 본 몇 몇의 드라마 혹은 영화에서
굳이 몰라도 될 것들, 알게 되면 변하는 것들에 대한
묘사 혹은 서사가 보인다. 그것은 시간을 훌쩍 뛰어 넘거나 영혼이 되거나(몹시 불가능한 상황이거나, 바라는 상상의 한도 내에서)등등의 요소들 사이에서다.
검색에 주저해 보통은 아내에게 부탁하는 일이 많다. 심지어 기저귀까지, 그럼에도 검색을 마친 후 곧잘 아내와 상의하려고 한다. 사실 그게 나의 즐거움이다. 상의, 곧 대화. 알고 싶은 건 상품의 내용이라기보다 상품에 대한 너와 나의 생각, 좋음과 나쁨, 기대와 상심 등등의 감정에 관한 것들. 내가 알고 싶고 궁금해하고 눈을 바라보는 것은 대부분이 이런 것들과 관계된 것이다. 굳이 몰라도 될 기저귀 브랜드의 이름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가 않아서다(그래서 허비하는 시간이 많아진 것도 있다. 예컨대 그거 뭐였지? 하면서 지난 장바구니를 뒤지는 것과 같은 행위, 그리고 후회하는 행위에 더더욱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사실 내가 알고 싶은 건 매일 아침 라디오에서 나오는 확진자 수나 최저기온이 아니다. 확진자가 다녀간 장소나 요일 또한 더더욱 아니다. 현재시각 나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우리 엄마의 계좌번호다. 그러게 나는 아직도 그 쉬운 걸 알지 못한다. 아빠나 작은숙모에게 물어보면 금방 알 것인데도 그러질 못한다. 십년 넘게 궁금해하는 중이다. 이건 알아도 문제 몰라도 문제다. 몰라서 문제가 되는 것보다(이건 불편함에서 끝나지만) 알아서 문제가 되는 게 더 크다는 걸 알기 때문에 주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며칠 혹은 몇시간을 앞서 보는 초능력을 갖게 된다면 아마도 나는 알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쓸데없는 고민으로 나와 엄마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곧 후회할 테니까.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무언가로 인해 기뻐할 시간이 줄어들 테니까.
세상에 나만큼 엄마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도 생각해봤다. 마음의 쓰임을, 그 나침반이 어디로 향하고 그 중심의 기압은 얼마인지. 무언가를 받고 무언가를 보내는 게 사람들 사이의 일이라지만 아무래도 나는 엄마와 주고 받는 것이 마음 이외의 것들이라면 싫다. 왜, 주고받는 모든 것에는 마음이 있어! 그래도 싫다. 그저 엄마하고는 마음만 주고받고 싶다, 그리고 알고 싶다. 기쁨으로 웃거나 희미하게 웃거나 하는 모든 즐거움에 대해서. 또한 엄마 눈에 반짝이는 것들까지. 나의 몫으로 엄마의 마음을 알고 싶다. 아버지의 몫, 동생의 몫과는 별개로.
내주에 엄마집으로 향한다. 아이들을 핑계삼아 나는 엄마 마음에 있는 내 방으로 향할 것이다. 노란 방, 그것이 햇살인지 엄마가 심어놓은 벼의 색인지는 모르겠다. 이번에도 엄마의 계좌번호를 알려고 드는 나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겠지, 하며. 그 긴 농의 시간으로.
20.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