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많이도 불었다, 그런 날.
잠깐 집 근처 산책이나 다녀올까 채비를 하던 중
엄마의 입에서 “나 일하는 데 갔다올까?”
8년째 요양보호사 일을 하시는데 나는 한번도
거길 가보지 못했다. 과거, 엄마가 일했던 여기 저기
영양돌솥밥 집부터 용봉동 아파트까지
종종 엄마를 데리러 가거나 밥먹으러 가거나 했었는데
지금 일터엔 한번도 심지어 이름도 몰랐다.
몇번 버스를 타면 목적지까지 나 혼자 타고간다며,
집앞에서부터 가는 길에 펼쳐진 풍경을 두고
세세한 묘사를 더해가며 설명해주었다.
그 소리가 어찌나 달달하던지 뒷좌석에 앉은 둘째녀석은
이내 눈을 감아버렸다.
은수는 그게 무언지 귀에 담을 생각보다는
차창밖으로 보이는 까치집에만 열을 올리거나
CD로 듣는 동화의 볼륨을 작다며 큰소리를 쳤다.
아빠와 할머니의 대화소리가 방해가 된 것이겠지,
굽이굽이 산과 논으로 난 2차선 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려
은수 손을 잡고 엄마의 일터 근처에 내렸다.
점심시간 전화를 하면 동료들과 산책을 하거나
쑥과 고사리를 캐고 있다던 야트막한 동산과 같은 곳,
학교를 개조해 지었다는 빨간벽돌의 요양원이라는 이야기
부터 자기보다 더 오래 다녔다는 할머니의 집이 저긴데
이 한적한 곳에 1억짜리 집이 말이 되냐는 이야기와
근처 연수원이 생겼는데 보호사들이 여기를 그만두고
거기로 다 가버렸다는 이야기까지.
그래도 자기는 어르신들 돌보는 게 참 좋다며
그렇게 벌어서 아들내외 반찬도 해서 보내주니 좋다며
은수 손을 잡고 쑥을 뜯었다.
바람이 매서워 이내 돌아선 길에 꽃이 흥건했다.
내 기준에서 엄마와의 데이트는 대학 졸업식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서울에서 음악한다고 스물일곱에 집 떠나
서른이 되어서야 그래도 졸업장은 있어야한다며 참석한
졸업식에 꽃다발 한아름 안고 강의실 뒤에서 눈물훔치던
뭐 그리 바쁘다고 학교근처 삼겹살 집에서 점심을 먹고
터미널로 곧장 향하는 아들 배웅해준 그 때.
엄마 걱정할까 새신발 사신고 갔었는데 기억하는가,
툭 하고 물어볼까 하던 차에 엄마 신발이 보인다.
처음보는 신발이라 물어보니 외숙모 돌아가시기 전에
사촌누나가 제 엄마 주려고 산 것을 결국 못주고
내 엄마에게 줬다고. 그게 벌써 8년도 넘은 일인데
아직도 새신발같다. 숙모는 엄마에게 신발을 주고 갔다.
로또가 되는 상상보다 엄마가 죽는 상상을 더 자주 한다.
그 이후의 삶에 대해 나는 얼마나 준비를 하고 있는가,
마음의 크기는 정해져있고 마음 한덩이가 없어지면
그것을 채우는 것이 누구일까. 여기 두 놈일까,
아니면 엄마가 사랑한 신일까.
바람이 많이도 부는 그런 날, 매섭게 들추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셔터를 누르는 일과
그러기 전에 여길 봐, 말하는 것.
나를 좀 봐, 그대들이 흩어지기 전에 나를.
시간이 흘러 그대들이 사라지기 전에 나를.
나를 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