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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Mar 15. 2022

아이들의 깜짝 이벤트

나는 이벤트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무슨 Day 챙기는 일. 다 상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연애 때, 그리고 결혼하고 몇 년까지는 발렌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를 챙겼다. 그렇지만 이제는 챙기지 않는다. 그런 날을 챙기지 않으니 마트며 편의점이며 앞에 진열한 초콜릿에 마음이 동요하지 않아 편안하다. 남편과 서로 챙기지 말자고 합의하기 전에는 '초콜릿을 사야 하나? 남편 것만 사야 하나? 아빠 것, 아버님 것도 사야 하나?'라는 생각에 다소 괴로웠다.  


그런데 지난달 둘째 아이가 지난달 14일에 묻는다.

"엄마, 발렌타인데이는 누가 누구한테 주는 거야?"

"원래 외국에선 남자, 여자 구분 없이 좋아하는 사람한테 주는데 한국에선 여자가 남자한테 주는 날이야."

그랬더니 초콜릿 하나를 사 달라고 한다. 편의점에서 초콜릿을 사 주었더니 집에 와서 무릎을 꿇으며 내게 초콜릿을 건넨다.

"엄마, 내 사랑을 받아줘!"

오구오구. 어디서 그런 걸 배웠니?


그리고 오늘, 학원에 다녀온 아이들이 속닥속닥 거린 다음 말한다.

"엄마, 이따 8시에 파티가 열릴 거예요. 이 표를 들고 파티장으로 오세요."

파티장 안내 화살표 & 축하 파티 포스터

바닥엔 파티장 안내 화살표가 있고, 벽에는 축하 파티 초대 여부가 붙어 있다.

"손님, 어서 오십시오. 이쪽입니다."

얘들아, 근데 무슨 파티야? 뭘 축하하는 거야?"

"그건 와 보시면 압니다."


화이트데이 축하문 & 가나 초콜릿

파티장(=아이 방)에 입장하니 불이 꺼져 있고 핸드폰과 손전등이 켜있다. 아이들이 헌 택배 상자를 내밀었는데, 테이프를 뜯으니 가나 초콜릿이 들어 있었다.

"엄마, 교통카드 티머니로 편의점에서 산 초콜릿이에요! 하루 늦었지만 화이트데이 축하해요!"

그리고서 벽을 살펴보니 축하문이 붙어 있다.


화이트데이 축하해요. 저희가 편의점에서 사서 준비했어요.

파티가 하루 늦게 진행되어 죄송합니다.


엄마 몰래 계획 & 파티장 조명용 손전등

둘이 계획서도 만들었다.


엄몰(엄마 몰래) 계획

1. 포스터, 티켓 만들기

2. 초대하기

3. 파티 타임

4. 초콜릿 주기


"얘들아, 순서가 바뀌었다? 파티 타임 한 다음에 초콜릿 주긴데?"

"괜찮아요. 근데 초콜릿 먹으면 안 돼요?"

"그래, 먹자."

"아빠는 어떡해요? 다 같이 나눠 먹어야 하는데."

"아빠 건 두 조각 남겨놓자."


초콜릿을 먹으며 댄스 타임이 벌어졌다. 아이들 덕분에 난 오랜만에 적성에도 맞지 않는 춤을 췄다. 아이들과 함께 웃는 이 시간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근데 얘들아, 이 파티는 언제까지니? 이제 마지막 곡 한 곡만 추고 그만 하자."


그렇게 마지막 춤을 추고서 아이들은 아쉬웠는지 그림자놀이까지 했다.

불 끈 김에 손전등 비춰 그림자놀이

예상치 못한 깜짝 이벤트에 즐거웠다. 그런 이벤트를 기획한 아이들이 기특하고 대견하다.

이런 화이트데이라면 내년에도 환영이다. 과자업체의 상술이라도 홀딱 넘어가 줘야 한다.


그런데 얘들아, 티머니로 샀으면 엄마 돈으로 산 건데, 다음부터 이벤트는 너희 용돈으로 해 줄래?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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