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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May 06. 2022

MBTI 결과에 불쾌해진 이유

MBTI가 유행이지만 난 나의 MBTI가 무엇인지 모른다. 옛날 옛적 한 15년 전에 해봤던 것도 같은데 가물가물하다. 몇 달 전에 인터넷에서 무료 MBTI 검사를 해놓고 '에이, 나랑 별로 안 맞네.'라고 생각하며 결과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  


얼마 전에 남편과 대화하던 중에 문득 나의 MBTI가 궁금해졌다. 남편은 "내가 극내향이라서 그래."라는 말을 자주 한다. 전화 거는 것을 꺼려하는 것도, 새로운 데 가기 싫어하는 것도, 초행길을 운전하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도 다 자신이 극내향 인간이라서라고 한다.


"아니, 이 사람아. 나도 내향인이라고!"

나 역시 집에서 혼자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밖에 나가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좋다. 그럼 내가 내향은 맞나? 내 MBTI 유형이 뭐더라?


MBTI의 4가지 지표 (이미지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그렇게 시작한 MBTI 무료 검사. 어떤 문항은 금방 고를 수 있는데 어떤 문항은 고르기가 힘들다. 은근히 문항이 많아서 이걸 계속해야 하나 슬슬 귀찮아질 무렵 결과가 나왔다.

ENTJ (사령관), 이미지 출처: 16personalities.com


아, 이 사람 기억나! 그림을 보니 몇 달 전에 했던 것과 동일한 결과임을 알겠다.


Extraverted(외향) – 57%, iNtuitive(직관) – 55%, Thinking(사고) – 56%, Judging(판단) – 61%


내 MBTI 유형은 ENTJ라고 한다. 에너지 방향이 I가 아님에 다소 놀랐지만 E(외향)와 I(내향)의 비율 차이가 크지 않다. 마찬가지로 인식 기능도 N(직관)과 S(감각)의 차이가 크지 않다. 판단 기능도 T(사고)가 F(감정)보다 약간 높을 뿐이고 생활 양식은 J(판단)이 P(인식)보다 다소 높다.


몇 달 전에 검사를 해놓고 내 유형을 잊었던 이유는 무료 MBTI 검사 사이트에서 각 유형별로 이름을 붙여놓았는데 ENTJ에 붙은 '사령관(Commander)'이라는 이름과 설명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령관은 타고난 리더입니다. 이 성격 유형을 가진 사람들은 카리스마와 자신감의 선물을 구현하고 공통 목표 뒤에 군중을 모으는 방식으로 권위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커맨더는 또한 무자비한 수준의 합리성을 특징으로 하며,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추진력, 결단력 및 날카로운 마음을 사용합니다. 아마도 그들이 나머지 세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더 소심하고 민감한 성격 유형을 압도하지 않도록 인구의 3%만 차지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몇 달 전에, 그러니까 내가 한창 회사에서 괴로웠을 때 나는 이 설명을 읽으며 나의 직속 상사인 P 팀장을 떠올렸다. 게다가 저 그림에서 뭔가를 가리키며 가르치는 듯한 사람은 나의 팀장님과 비슷한 분위기가 난다.  

(저기다 안경만 씌워놓으면 딱일 듯.)


P 팀장도 팀원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같은 팀원이었던 시절엔 맡은 업무가 분리되어 있어 서로의 일에 터치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분은 일 잘하고 재미있는 선배였다. 그러나 전임 팀장님이 갑자기 사직을 하면서 이분은 갑자기 팀장 대행을 거쳐 정식 팀장이 되었다.  


P 팀장이 팀원이었던 시절, 사이가 나쁘지 않던 시절에 팀원들은 단톡방에서 재미로 심리 테스트류를 보냈었다. "나와 비슷한 대통령은 누구일까?" "나는 어떤 꽃일까?" 등등이었다. 나는 그런 테스트를 할 때마다 P 선배와 같은 결과가 나왔었다.

"어머, 선배님. 저랑 되게 비슷하신가 봐요. 저번에도 결과가 같더니 이번에도 똑같네요."

우리는 여우과는 아니라 사내 정치도 못하고 성공할 타입은 아니니 그냥 주어진 일이나 하고 살자는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건지, 혹은 한 사람의 본성은 급박한 순간에야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건지 몰라도 P 선배는 팀장이 되고서 지독한 모습을 드러냈다.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어. 넌 대답만 하면 돼.)' 화법부터 '실무자급과 관리자급 선긋기("넌 실무자고 난 팀장이야.")', '토스하고 빠지기("난 상무님 지시 전달했다?")'까지 시전하는 기술이 너무 많아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제가 더 잘해야 하는데 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던 나도 몇 번을 심하게 당하고 나니 그 사람을 여태 좋은 선배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을 자책했다.  

'내가 사람을 이렇게나 못 보는구나. 저렇게 야망에 눈이 멀어 아랫사람 밟는 사람인 걸 몰랐다니.'


 

이번에 MBTI를 하고 불쾌해진 이유는 내 결과의 설명을 읽고 그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P 팀장의 MBTI 결과는 모르지만 여태까지 심리테스트 결과가 일치했던 경험을 떠올려 볼 때 MBTI 결과마저도 혹시 같지 않을까 싶었다. 원치 않지만 언젠가 혹시 내가 팀장급 관리자가 됐을 때 내 미래가 저런 모습일까 봐 소름이 돋았다. 더 이상 위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도 없고 보직자가 되고픈 마음도 없다. 그러나 회사라는 공간은 원치 않는 일도 해야 할 상황이 생긴다. 혹시나 P 팀장이 그랬듯 얼결에 팀장이 되었을 때 내가 P 팀장과 같은 유형의 인간이 될 것 같아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이번 MBTI로 인해 나는 나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나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강압적이고 권위적이고 목표 지향적으로 나아가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여태 그러지 않았다면 앞으로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일 수 있다. 닮고 싶지 않은 사람을 닮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불쾌해졌다.  


MBTI 결과가 절대적으로 신뢰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같은 유형의 사람이라도 각기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정적으로 P 팀장이 이 유형이 아닐 수도 있다. (ENTJ가 전 세계에 3%라고 한다.) 그리고 나는 P 팀장과 다른 배경에서 자라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니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겠다고 고심한 며칠 동안 등짝 통증이 재발했다. 직장 다니는 동안 고질병처럼 앓다가 휴직하면서 사라진 통증이다.  


괜히 MBTI는 해가지고. 몇 달 후에 아무래도 다시 해봐야겠다. (몇 달 전에도 이런 마음이었다.)

그때도 저 그림이 보이면... 결과에 순응해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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